유상철(48) 전 전남 감독에게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에서 뛰는 이강인(18ㆍ발렌시아)의 1군 등록 소식은 유독 반갑다. 유 감독이 선수 생활을 마친 직후인 2007년 KBS 예능 프로그램 ‘날아라 슛돌이’에서 사제의 연을 맺은 걸 계기로 꾸준히 안부를 주고받으며 그의 성장을 지켜봐 왔기 때문이다. 비록 당시 ‘골대 맞히기’내기에서 이강인에 패하는 굴욕을 맛보기도 했지만 청출어람을 지켜본 스승 입장에선 그 또한 행복이었다.
이강인이 1군 등록 소식이 전해진 31일 유 감독은 본보와 전화인터뷰에서 “스승으로서 너무 흐뭇하다”며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이강인을 두고 “앞으로 우리나라 대표팀 주축으로 성장할 선수이기 때문에 좋은 경험을 꾸준히 쌓아 성장했으면 좋겠다”면서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모인 성인 무대에선 더 치열하고 냉정한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발렌시아는 이날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이강인이 1군 선수로 등록됐으며, 등번호는 16번을 달게 됐다”고 발표했다. 한국 선수로는 이천수(레알 소시에다드), 이호진(라싱), 박주영(셀타비고), 김영규(알메리아)에 이은 다섯 번째 스페인 1부 리그에 등록 선수가 됐다. 특히 그에게 걸린 바이아웃(최소 이적료) 조항도 기존 2,000만 유로(약255억원)에서 8,000만 유로(약 1,020억원)으로 인상된 것으로 전해졌다. 발렌시아가 그만큼 이강인을 지키고 싶어한다는 해석이다.
나이에 비해 다소 이른 1군 등록의 꿈을 이룬 이강인에게 유 감독은 “현지 유소년 클럽 시스템을 거쳐왔기에 성인 무대서도 잘 적응할 것”이라며 믿음을 보냈다. 이강인을 ‘스폰지’에 비유하면서 “하나를 가르치면 두 개를 깨우칠 정도의 흡수력을 지닌 선수”라고 평가한 그는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공을 다루는 솜씨가 단연 뛰어났던 데다, 배우려는 의지와 자세도 남달랐다”고 떠올렸다. 입학 전 아이들에겐 한 가지를 여러 번 가르쳐도 서투르기 마련인데, 이강인은 잘 뛰고 영리한 성인 선수를 축소해 놓은 것 같아 깜짝 놀랐었다는 게 유 감독 얘기다.
유 감독은 “내가 (이강인에게) 조언 할 게 있겠느냐”라면서도 “앞으로 더 긴장하고 더 큰 책임감을 가지길 바라는 게 지도자로서의 마음”이라고 했다. 그는 “이강인의 1군 등록은 곧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과 같은 위치에서 대결해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치열하고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독하게 마음먹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백승호(22ㆍ지로나), 정우영(20ㆍ바이에른 뮌헨)과 함께 호흡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표팀 활약에 대한 기대도 전했다. 축구팬들은 이강인을 포함한 이 셋을 2019 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기성용(30ㆍ뉴캐슬), 구자철(30ㆍ아우크스부르크)를 이을 재목으로 꼽는다. 유 감독은 “대표팀 경기는 클럽팀 경기와 달리 국민적 관심과 기대가 높기에 더 큰 책임감과 무게감이 뒤따를 것”이라면서 “벌써부터 월드컵 등 국제무대에서 활약할 선수로 기대를 모으는 만큼 앞으로 대중의 질책과 비판도 뒤따르겠지만, 잘 헤쳐갈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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