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다양하고 개성적인 스타일의 동시가 종종 보이긴 하지만 여전히 대개 동시는 짧고 간결한 편이다. 어린이 독자가 읽으니 서서히 자연스레 그러한 형식미를 지니게 됐겠으나 때로 구태의연한 형식에 갇혀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시라고 하기에는 내용이 지나치게 명료하고, 문체가 너무 딱딱하고 정돈되어 있다.
정유경의 ‘까불고 싶은 날’(창비, 2010) ‘까만 밤’(창비, 2013)은 여느 동시와 비슷한 산뜻하고 발랄한 스타일과 감성을 세련되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 시집은 그의 예전 시집과도, 다른 시인의 그 어떤 시집과도 다르다. 숲, 달, 바다, 눈사람 등 더 이상 새롭지 않을 법한 사물이 신비로운 환상으로 너울거린다. 마치 여행자처럼 부지런히 거닐고, 밤하늘 달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상력이 어깨에 뻣뻣하게 들어간 힘을 뺀 부드러운 언어 사이로 유영한다. 자유롭고 환상적인 감성을, 어린이 독자를 고려해 한 걸음씩 풀어놓지만 조금씩 올라가는 낮은 계단들과 “바로 이거였어” 알려주는 마지막 계단이 지루하거나 유치하지 않다.
고정되지 않고 흐르니 성마를 일이 없다. 사랑하는 달이 저 하늘 멀리 있어도 멀면 멀수록 먼 곳까지 사랑의 눈길이 가득 채워지니 좋다.(‘먼 달을 위한 사랑노래’) 눈사람을 열렬히 끌어안는다면 그도 사랑도 녹아 사라질 테니 아무리 사랑해도 아니, 많이 사랑할수록 그에게는 그에 맞는 사랑법이 필요하다(‘눈사람’)
내가 너에게 그러하듯 내가 원하는 경계와 거리도 분명하다. 날 찾아오는 이, 그러나 작은 새처럼 포로롱 가슴에 안기지 않고 늑대처럼 으르렁거리며 오는 이에게는 숲 울타리를 잠시 마련해둔다. 너의 사나운 이빨이 숲 울타리를 지나는 동안 달빛처럼 말갛게 빛날 때까지 너는 거기 있어라. 나의 숲이 ‘부디’ 네 마음에 들기를(흡족하기를) 바라고 네 마음속으로 ‘부디’ 들기를(들어가기를) 바라지만 울타리를 거둘 수는 없다. 나는 너와 작은 새로 만나고 싶으니까.
김유진 어린이문학평론가ㆍ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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