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에 확인된 양국 격차가 오래 지속되다 지난 60여년 사이에 축소ㆍ해소된 배경을 살펴본다. 근자엔 경제ㆍ산업ㆍ환경 등의 양적 분야는 물론 문화ㆍ질서ㆍ시민의식 등 질적 분야에서도 격차라는 말이 실감나지 않을 만큼 차(差)가 줄었다. 격차로 알려진 것 중 일부가 역사ㆍ국민성ㆍ사고방식에 따른 주관적 차이나 다른 점임을 고려하면 차는 더 작고 일부에선 해소되거나 역전되었을 수 있다.

참고로 UN의 세계행복보고서가 분석한 행복 수준은 일본이 약간 앞선다. 우리가 6개 지표 중 1인당 GDP, 사회적 지원, 기대건강수명, 인생선택의 자유, 부패인지도에서 뒤지고 넉넉한 사회(스트레스 관련)에서 앞서 2018년판 기준 156개국 중 우리 57위, 일본 54위다.

먼저 양적 측면의 격차 축소부터 보자. 첫 번째 계기로 일제의 조선병합이 고려될 수 있다. 20세기 전반 35년간, 일제는 식민지 조선에 행정ㆍ사법ㆍ교육ㆍ보건위생 등 통치 관련 제도와 기관을 도입, 설치하고 철도ㆍ도로ㆍ전력 등 인프라망을 깐다. 또 품종 개량 등 농업 기술 제고와 훈련된 관료의 투입으로 격차 해소에 나선다. 그 결과 차별적 신분제, 낮은 농업생산성, 상공인 박대, 약한 분권ㆍ공익 추구 관련 문제점이 대폭 해소되었을 수 있다. 하지만 통계치 해석을 둘러싼 학계내 이견, 통치 목표에서 식민지 경영을 통한 일제의 이익 추구가 주(主)이고 조선의 발전과 조선인의 삶의 질 개선이 부(副)인 점, 이것이 1940년대 전반 전쟁기의 수탈과 연관되는 것을 고려할 때 병합을 축소 계기로 보기엔 설득력이 약해 논외로 한다.

두 번째 계기로 군 출신 대통령과 유력 각료에 의한 개발독재와 산업정책이 주목될 수 있다. 1960~70년대 박정희 정권에서 뿌려진 씨앗이 1980년대 후반의 노태우 정권 이후 한일 격차 축소로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이 무렵부터 일본이 장기침체를 보이고 우리는 서울올림픽을 거쳐 IMF 외환위기 수습 후 재도약에 나서 추격 속도를 높인다. 주목할 점은 추격기에 우리의 리더 그룹과 산업 일꾼들은 ‘따라가지 못하면 남이 한 번에 하는 일을 백 번 시도하고 열 번에 아는 일을 천 번 도전하는 열성으로 다가갔다’는 사실이다. 이는 중용 20장을 일관하는 성(誠)의 자세로, 일찍이 성혼이 1581년 소에서 언급한 “지성스러우면 모두 감동시킬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어느 것도 감동시킬 수 없다”는 말을 국민의 눈높이 철학 내지 각오로 체화한 것이다.

한편 추격의 유력 동인(動因)으론 삼성ㆍ현대ㆍSKㆍLG 등 재벌계 대기업에 의해 주도된 수출 증대가 유력 후보다. 수출경쟁력의 배경엔 저비용-양질의 노동력, 권위주의 정부의 산업정책에 따른 정책 금융과 세제 지원, 비관세 장벽을 통한 수입 억제와 덤핑 수출 지원 등이 있다. 또 정주영ㆍ이병철 등 재벌기업 총수의 신속하고 과감한 투자결정 등 위험 감수 행위, 무역 장벽이 높지 않고 중국 기업의 본격 대두 전이라는 대외 여건도 한몫 한다. 그 결과 독립 후 40년만에 올림픽을 열고 50년이 안되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되는 등 현대 역사의 품격을 높인다. 구매력평가 1인당 GDP로 본 최근의 한일 차이는 10%에 불과하다.

눈여겨 볼 점은 거론된 계기와 동인에 영향을 미친 핵심 요인이 우리 자신의 내면적 변화라는 사실이다. 활약 기회가 공평하게 부여되자 상실되거나 약화된 주인의식ㆍ성취동기가 되살아나는 등 국민의 의식구조가 재조직되면서 잠재 능력이 계발된다. 이는 두 가지 외부 여건 변화 즉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지주·자본가 등 기득권층의 경제적 기반이 붕괴되고, 남녘 땅에 미국식 민주주의 정치가 이식된 것과 연관되어 있다. 전자 덕분에 또래들이 비슷한 출발선에서 인생 경쟁에 나설 기회를 얻고 후자로 인해 유학 이념 중시 체제에서 잉태된 구속복같은 엄한 신분제의 굴레와 멍에에서 벗어난다. 물론 조선 말의 무력한 조정과 외세 각축, 남북한 대립, 군사독재 등 실격의 역사로 기록될 사건들의 직ㆍ간접적 영향도 받는다.

다음으로 질적 측면의 이슈인 리더층의 세계관, 더디고 약한 개혁, 말뿐인 민생 우선에서의 격차는 양적 이슈 이상인데 일신이 힘들다. 리더ㆍ경영자ㆍ노조ㆍ시민단체의 의식 전환, 구성원간의 배려ㆍ소통 증진 등 사회적자본의 충실화, 질서와 관행의 재정비를 통한 안심ㆍ안전 사회 구축 등이 목표로 물적ㆍ정량적 사안이 아닌 인적·정성적 사안이고 문제의 역사적 뿌리 또한 깊다.

정리하면 지상 과제 같던 일본 추격이 가시권에 들어온 지금, 추격을 넘어 추월에 나서기 위해선 양적 이슈에서의 격차 해소를 위한 지속적 도전은 물론 단계적이고 복합적인 접근을 통해 차가 더 큰 질적 이슈에서의 개선 노력을 인내심있게 추구하는 게 요구된다. 가령 인재들이 열린 세계관과 포용성을 갖춘 리더로 커 나갈 수 있도록 구태의 정치ㆍ인사 풍토를 ‘성’의 자세로 일신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배준호 한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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