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구속에도 검찰엔 묵비권, 법원엔 불출석
사법농단 사건의 실무 총책임자로 지목돼 구속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검찰 조사에 이어 법원 재판도 거부할 태세다. 수사기록 열람, 복사 등을 둘러싼 검찰과 법원에 대한 불만이 표면적 이유다. 하지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예상 밖 구속 때문에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30일 한국일보 취재 결과,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양 전 대법원장 구속 이후 임 전 차장에 대한 추가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임 전 차장이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는데다, 임 전 차장의 재판 일정을 고려한 조치다. 그나마 자신의 주장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했던 임 전 차장의 첫 재판도 미뤄졌다. 황정근 변호사 등 임 전 차장 변호인단 11명 전원이 모두 사임했다. 형사소송법상 주요 사건은 변호사가 반드시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임 전 차장 사건 또한 변호인 없이 진행되지 않는다. 임 전 차장도 “꼭 봐야 할 기록을 다 보지 못한데다 주 4회 재판을 진행한다는 건 피고인의 방어권이 심각하게 침해당하는 것”이라는 취지의 불출석 사유서를 법원에 냈다.
법조계에선 양 전 대법원장 구속으로 임 전 차장 측 재판 전략이 대폭 수정되리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임 전 차장은 지난해 10월 구속된 뒤 철저하게 묵비권을 행사했다. 일일이 설명하기보다 차라리 검찰 수사 진행 상황을 지켜보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검찰이 저인망식 수사로 양 전 대법원장을 구속하는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은 “실무진이 알아서 한 일”이란 취지의 주장을 내놨다. 책임을 떠안을 수 있는 임 전 차장으로선 전략 수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핵심은 공모 관계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됐으니 범죄사실은 어느 정도 소명됐다. 다만 혐의가 수십 개다 보니 공모의 범위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다. 재판에서도 공모 관계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양형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공소사실 가운데 몇 개가 인정되느냐에 따라 이미 인정된 범죄의 죄질도 더 안 좋아지는 구조여서, 형량이 갑절로 뛸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일각에선 임 전 차장이 묵비권을 풀고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라 주장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양 전 대법원장을 사실상 주도자로 규정한 만큼 임 전 차장은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 항변할 수도 있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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