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집 부문 알마 ‘안평 : 몽유도원도와 영혼의 빛’
“안평은 35년 짧은 생애 동안 번잡함 없는 맑고 깨끗한 세계를 추구했어요. 당대의 정치는 이를 허용하지 않았죠. 안평이 조금 더 오래 살았더라면, 조선의 학문과 예술은 한층 더 발전했을 겁니다.”
28일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 교보문고 합정점 내 배움홀에서 열린 제 59회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작 북콘서트 5번째 강연. 편집 부문 수상작 ‘안평: 몽유도원도와 영혼의 빛’(알마)을 쓴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안평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安平大君·1418~1453)은 둘째 형 수양대군(首陽大君)에게 살해당한 비운의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심 교수는 문헌, 사료를 찾아내 조선 문학과 미학을 주도한 ‘예술가 안평’의 면모를 차곡차곡 입증했다.
시작은 ‘몽유도원도시화권’이었다. “1985년 일본 교토대에서 유학할 때 우연히 들른 도서관 서고에서 몽유도원도시화권을 처음 마주한 뒤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안평 관련 자료를 모아 나갔죠.” 몽유도원도는 안평이 꿈에서 본 무릉도원을 당시 최고의 화원이었던 안견에게 그리게 한 작품이다. 신 교수는 “안평대군의 정신세계와 미학적 성취가 집약된 상징물”이라고 평가했다. ‘안평’ 책 마지막 페이지에 그림이 부록처럼 실려 있다.
안평은 아버지 세종의 총애를 받으며 국가편찬 사업을 관장했다. 용비어천가에 나오는 한시를 짓고,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서 한자 표준음 연구서인 ‘동국정운’의 편찬도 총괄했다. 그러나 뛰어난 재능은 비극의 씨앗이 됐다. 정치적 야욕만 앞서고 학문과 예술적 감각은 모자랐던 수양이 안평을 눈엣가시처럼 견제했다. 어린 조카 단종이 즉위하자 수양은 안평을 강화도로 유배 보내고 이내 사약을 내렸다.
“안평과 그 주변 세력은 정치적 욕심과는 거리가 먼 문화 모임이었다는 점에서, 수양의 권력 싸움은 ‘섀도우 복서’를 연상케 합니다. 스파링 파트너도 없는데 가상의 적을 세워 놓고 혼자 잽을 날리는 것과 다를 바 없었죠. 학문과 예술이 정치 권력으로부터 분리되는 건 과거에도, 오늘날도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청백의 가치와 내적 세계의 순수함을 지키려는 것 자체가 정치적 행위로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안평’은 스케일부터 다른 책을 압도한다. 총 분량 1,224쪽, 두께만 64㎜에 달하는 흔히 말하는 ‘벽돌책’이다. 64㎜는 제본 기술로 가능한 최고 제본 두께(65㎜)에 육박한다. 그의 고민은 이미 개정판을 향해 있었다. “책을 내고 나면 꼭 뒤늦게 오류가 보이기도 하고 새롭게 추가하고 싶은 내용도 생기니까요.”
심 교수가 안평이란 인물에 천착한 세월만 30년이 넘는다. 그는 그러나 “안평에 대해 더 모르게 됐다”고 고백했다. “한 인간의 생애를 고증하는 것은 단 하나의 증거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학자는 끊임없이 자료를 찾고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감정하고 팩트를 모을 뿐이죠. 안평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 내는가는 독자의 몫이에요. 정답은 없습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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