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이 디지털 형태로 화폐를 발행하면 결제수수료 절감, 거래투명성 향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반면, 은행 및 금융시장의 자금중개 기능 침해 등 부작용도 우려된다는 한국은행의 연구 결과를 나왔다. 한은은 현재로선 디지털화폐를 발행할 계획이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한은은 29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보고서를 발간했다. 디지털화폐는 중앙은행이 발행하고 기존 현금과 일대일 교환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가상화폐와는 구별된다. 디지털화폐가 현실화할 경우 개인은 중앙은행에 개설한 계좌를 통해 다른 계좌로 송금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다만 중앙은행이 다수의 개인 계좌를 직접 관리하는 부담을 피하기 위해 은행이나 정보통신(IT)업체가 디지털화폐를 관리하는 간접운영 방식을 택할 수도 있다. 현재 스웨덴, 우루과이, 튀니지 등이 디지털화폐 발행에 적극적이다.
한은은 디지털화폐가 계좌이체나 온ㆍ오프라인 직불카드의 형태로 불편 없이 사용될 걸로 내다봤다. 특히 중앙은행 계좌를 통해 디지털화폐를 주고받게 되면 영리기관인 시중은행에 비해 수수료 부담이 낮아 상거래에 활발히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또 익명성이 보장되는 현금과 달리 디지털화폐는 거래기록이 남는 터라 탈세나 불법자금 거래를 줄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한은은 디지털화폐에 대한 금리를 조정해 통화정책 여력을 키울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특히 디지털화폐 계좌에 대한 마이너스 금리 부여, 다시 말해 디지털화폐를 보유하면 오히려 이자를 내야 하는 상황을 조성하면 시중 유동성이 늘어나 경기 부양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한은은 내다봤다.
부작용 우려도 적지 않다.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의 역할을 대체하면서 은행 고유의 자금중개 기능이 약화될 것이란 전망이 대표적이다. 특히 중앙은행이 디지털화폐에 금리를 부여할 경우 은행 예금이 중앙은행 계좌로 쏠릴 수 있다. 은행이 예금보다 조달비용이 높은 금융채 발행 등을 통해 대출재원을 마련할 경우 대출고객이 보다 비싼 이자를 물어야 하는 상황도 생길 수 있다.
한은은 “가까운 장래에 디지털화폐를 발행할 필요성은 크지 않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디지털화폐 발행에 적극적인 나라가 없진 않지만, 우리나라는 이들 국가처럼 시급한 발행 동기가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소액지급결제 시장에서 독점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스웨덴과 달리 우리는 다수의 서비스 제공사들이 경쟁하는 체제라는 설명이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