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무슬림 자치구역법 통과, 내달 최종투표 자치권 확정
27일 홀로섬 성당 테러 불구 보복 없어… 평화 의지 굳건
“이게 70평생 나의 첫 투표다. (투표)잉크 묻은 내 손은 무장투쟁에서 민주정치로의 변화를 상징한다.”
한 평생 필리핀 민다나오섬 모로족의 반정부 게릴라 활동을 지휘했던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의 지도자 무라드 에브라힘. 그는 28일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종교 탓에 벌어진 50년 내전을 끝내려면 주류 가톨릭과 비주류 무슬림이 절반씩 양보한 ‘무슬림 자치정부’가 해답이라는 얘기다. 과거 반군 지도자의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필리핀 국회의원 바이 산드라 세마도 “이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범죄, 부정부패와 함께 필리핀의 성장을 막는 ‘3대 족쇄’로 꼽혔던 남부 민다나오의 ‘반백년 내전’이 마침내 종식되고 있다. 다음달 6일 최종 투표가 남아있지만, 비극의 땅에 희망의 빛이 비추고 있다. 일부 세력들이 연쇄 폭탄테러로 재를 뿌리고 있지만, 필리핀 정부와 현지 무슬림 단체의 무력 분쟁 종식의지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민다나오는 최근 50년간 가톨릭과 이슬람 세력의 분쟁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가톨릭 신자가 80% 이상인 필리핀에서 소수집단으로 핍박 받아온 무슬림, 일명 ‘모로족’들은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남부 지역으로 밀려나 생활했다. 이들은 모로민족해방전선(MNLF), MILF 등을 결성해 분리 독립을 위한 무장 투쟁을 벌여왔다. 필리핀 정부군과 반군 간 내전 속에 무려 15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내전에 지친 필리핀 사람들은 2014년 체결된 ‘방사로모 기본법(BOL)’에 희망을 걸어왔다. BOL은 기존 ‘무슬림 민다나오 자치구역(ARMM)’을 해체하고 인근 28개 마을을 포함한 더 넓은 지역을 새로운 ‘방사모로 무슬림 민다나오 자치구역(BARMM)’으로 묶어 광범위한 자치권을 무슬림에게 주는 게 골자다.
이 법이 통과될 때까지만 해도 과연 평화가 올 것인가 논란도 많았지만, 민다나오 주민들은 반목과 불신을 억누르고 새로운 길에 들어섰다. 지난 21일 실시된 BOL 찬반 주민투표에서 압도적인 찬성표가 나왔다. 밀림 속에서 항전하던 이슬람 전사들이 대거 시내로 나와 자치권을 얻는 투표를 했다. ARMM 지역 투표에서 유효투표의 83%가량이 BOL에 찬성했다. 인콰이어러는 “’전쟁에 지친 사람들’의 승리”라고 투표결과를 자축했다. 다음달 6일 실시되는 ARMM 이외 지역 주민투표에선 BARMM에 포함될 지역을 확정하게 된다.
극단주의 무슬림 세력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공격은 과거와 달리 서구와 무슬림의 대립을 부추기지 못했다. 지난 27일 홀로 섬의 한 성당에서 터진 폭탄 테러로 20명이 숨지고 81명이 부상당했지만, 혼란 세력이 의도했던 가톨릭 세력의 보복은 없었다.
필리핀 정부도 평화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가려는 의지를 내비쳤다. 필리핀스타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선거관리위원회는 다음달 6일 예정된 2차ㆍ최종 투표를 미루지 않기로 결정했다. 오스카 알바얄데 필리핀 경찰청장도 “폭발물 특징을 파악해 어느 집단의 소행인지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번 평화 정착 노력의 카운터파트가 아닌 MNLF가 재를 뿌렸다는 관측에 대해서 살바도르 파넬로 대통령궁 대변인은 “우리가 추측의 영역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며 높은 경계를 표했다.
정부와 발을 맞춰온 MILF 역시 이번 테러를 강력 규탄하며 분위기 수습에 나섰다. 모하거 익발 MILF 평화 협상 대표는 현지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무분별한 폭력을 가한 자들을 체포하는데 도움을 줄 준비가 돼있다”고 말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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