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배추, 고등어 가격은 납득하기 쉽다. 인건비니 운송비니 해도 누구나 쉽게 수긍할 정도로 가격 변수와 산식이 단순하다. 하지만 금융상품 가격은 일반인들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통장에서 보험료니 대출이자니, 매월 수십 만원씩 꼬박꼬박 빠져나가도 사람들은 그저 때마다 털 깎이는 양떼처럼 무심할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온통 소수점 이하의 골치 아픈 수치와 ‘확률’이니 ‘리스크’니 하는 난해한 변수로 가득 찬 가격 산식의 적절성을 대체 누가 감히 따질 수 있겠는가.
□ 그래서 금융은 엄청난 편리에도 불구하고 애초부터 불신을 받아왔다. 그런 불신의 한 모습을 미히르 데사이 하버드경영대학원 금융학 교수는 최근 국내에 출간된 ‘금융의 모험(The wisdom of Finance)’에서 17세기 암스테르담의 유대인 상인 호세 데 라 베가의 책에 나오는 대화를 통해 보여 준다. “가장 공정하면서도 가장 사기가 심하고, 세상에서 가장 고상하면서도 가장 악명 높으며, 가장 우아하면서도 가장 상스러운 것”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금융 불신을 해소하겠다는 방안을 하나 내놨다.
□ 많은 불만과 의심을 받아 온 은행 대출금리 산정 체계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그 중 핵심은 대출 기준금리 지표로 널리 쓰이는 코픽스 산정 방식을 일부 바꿔, 전체 은행 대출액(1,177조원) 자금의 34%를 차지하는 결제성자금 및 기타예수ㆍ차입부채 조달금리까지 반영하는 새 코픽스를 도입한다는 내용이다. 결제성자금은 요구불예금 등 예금자 요구에 따라 수시로 출금되는 자금이다. 기타예수ㆍ차입부채는 은행이 중소기업 대출 등 특정 목적을 위해 정부나 한은 등에서 조달한 자금이다. 그만큼 금리가 낮다.
□ 결제성자금 등의 낮은 조달금리가 새 코픽스(잔액기준) 산정에 반영됨에 따라 해당 대출 기준금리는 더 낮아질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약 0.27%포인트 낮아져, 대출자에게 연간 1조원의 이자 부담을 줄여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출금리 산정 기준 변경은 좋은 업적”이라며 금융위를 극찬했다. 하지만 은행들은 지금껏 기준금리가 아무리 내려가도 이런저런 이자 인상 명목의 변수를 붙여 지나친 이자장사를 이어왔다. 이번 ‘대출금리 수술’이 업적만 있고 실속은 없는 조삼모사가 되지 않으려면 책임 있는 감독이 뒤따라야 한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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