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향토사학자 김인순씨 ‘일제 강점기 영주’ 발간
“1944년 9월 경북 영주시 순흥공립보통(초등)학교 4학년생들이 일본인 교장을 상대로 ‘일본은 이 땅에서 물러가라’며 동맹휴업에 돌입했어요. 이듬해 4월까지 계속됐죠. 지금 순흥초등학교에는 이를 기리는 ‘항일운동 기념비’가 있죠. 영주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초등생도 항일운동에 나선 독립운동의 성지라고 볼 수 있어요.” 3ㆍ1운동 100주년을 맞아 최근 ‘일제강점기 영주’를 발간한 영주지역 향토사학자 김인순(71ㆍ사진)씨는 29일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오늘날 우리의 번영은 당시 선열들의 피땀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피력했다.
김 씨는 “부끄러운 역사도 우리의 역사이고, 역사는 기록하는 것이다. 이 또한 후세에 교훈으로 남지 않겠는가”라며 책자 발간의 의미를 부여했다. 이 책은 당시 영주의 행정 경제 산업 문화 종교 등 전반적인 역사를 500쪽 분량으로 구성돼 있다.
‘사진으로 본 식민지 교육현장 파트에는 어린 학생들의 모내기, 가마니 짜기 장면, 어린 여학생들이 검은 치마에 흰저고리를 입고 맨손으로 누에를 만지는 모습 등이 담겨 있다. 학생들이 일제히 90도 허리를 숙여 신사단을 향해 참배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렇게 영주군수 재임기간인 1914년 제1대부터 1945년 11대까지 차례로 기술했다.
1922년 5월 4대 영주군수로 부임한 전성오는 고을의 문루였던 가학루(駕鶴樓)를 영주초등학교에서 구성공원으로 옮긴 사실, 1942년 부임한 영주군수는 군수품공출, 국방헌금 모집 등 전시업무를 적극 수행해 중일전쟁 공적소서에 이름을 올린 친일파라는 점 등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1908년 풍기인삼조합 초대 조합장 이풍환(1866∼1933)은 인삼의 체계적 재배와 생산, 관리에 노력했을 뿐 아니라 일제의 눈을 피해 독립운동가에게 독립자금을 준 것이 발각돼 고초를 겪었고, 몇 년 뒤 숨지게 되자 풍기지역 14개 단체가 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렀다는 점도 밝히고 있다.
김 씨는 “서울서 직장 생황을 하는 딸이 국회 도서관 등에서 자료를 찾아 주는 등 가족들의 도움이 컸다”고 말했다. 이 책은 영주시의 지원으로 영주문화연구회 명의로 발간됐다.
영주시 공무원 출신인 그는 정년퇴임 후 그 동안 ‘풍기인삼 천오백년’ 등 여러 향토사 관련 책을 펴냈다.
영주=이용호 기자 lyho@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