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국민 그림책 작가 벵자맹 쇼
“한국인에겐 완벽주의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다 들었습니다. 그러나 단점도 개성으로 승화시킬 수 있거든요. 자신의 본 모습을 지워가지 않았으면 해요. 저는 제 그림이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그릴 뿐입니다.”
세계적인 프랑스 그림책 작가 벵자맹 쇼(44)가 한국을 처음으로 찾았다. 올해 2회째를 맞는 삼척그림축제(25~27일)에 초청돼 한국 팬들을 만나고 있다. 28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그림책 작업의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놨다.
한국에선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지만, 쇼는 프랑스의 국민 그림책 작가다. 대표작은‘곰의 노래’를 비롯한 아기 곰 시리즈. 2012년 프랑스 정부가 선정한 ‘처음 만나는 책’에 뽑혀, 그 해 태어난 2만 8,000명의 신생아들이 한 권씩 선물 받았다. 2013년엔 미국 뉴욕타임스의 올해의 그림책으로 선정됐고, 2014년에는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안데르센상을 수상했다. 이후 전세계 22개 언어로 번역됐다. 국내에는 신간 ‘세상에서 가장 꼬리가 긴 마르쉬 이야기’(‘마르쉬’) 등 세 꼬마 시리즈도 출간돼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마르쉬’는 1960년대 벨기에 작가 프랑캥의 만화에 등장한 인기 캐릭터에서 따왔다.
쇼의 글도, 그림도 자유분방하다. 꿀벌을 좇아, 새로운 친구를 따라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아기곰, 조그만 트렁크에 들어가 낮잠을 자다 갑자기 도시에 떨어진 꼬마들의 좌충우돌 모험담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책 속 부모들은 아이들을 혼내기는커녕 함께 모험을 즐긴다. “제 부모님은 어렸을 때 ‘무엇이 돼라, 어느 방향으로 가라’라고 한번도 강요하지 않으셨어요. 저 역시 아이들이 보호를 필요로 할 때만 부모가 나서야 한다는 철학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5살, 8살인 두 아이는 쇼 그림책의 첫 번째 독자다.
쇼는 프랑스 남부 알프스 산골 브리앙송이란 마을에서 자랐다. 이 산 저 산 돌아다니는 게 전부인 일상을 보냈다. 그는 “너무 할 일이 없어서 상상력이 폭발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어린 시절 경험한 대자연의 강렬한 인상은 화려한 그림으로 책장 위에 펼쳐진다. 쇼는 한동안 파리에 살다가 아이가 태어난 뒤 알프스 마을로 돌아갔다.
삼척의 인상은 어땠을까. “삼척은 산도 있고 바다도 있어서 매력적이었어요. 생선 시장 항구도 신기했고요.” 그는 특별한 경험도 했다. “축제 기간 중 하루 눈보라가 몰아 치던 밤, 눈 덮인 바다를 구경하겠다고 혼자 산책을 나갔다가 길을 잃고 어두컴컴한 주변을 몇 시간을 걸으며 헤매다 술집에 들어갔어요. 마법 같은 순간이었죠. 프랑스로 돌아가도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우리 팀원들은 저를 찾느라 난리가 났었지만요(웃음).”
쇼는 어른들에게도 모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른들은 자신의 경험에 갇혀 감정에 솔직하지 못해요. 두려움, 행복, 슬픔을 느끼더라도 순간뿐이에요. 아이들은 경험이 없기 때문에 순수하고 강렬한 감정을 오래도록 간직합니다. 어른들이 저의 그림책을 보고 아이들처럼 많은 꿈을 꿨으면 해요. 새로운 감정을 느끼고 때로 허무맹랑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갈 수 있는 상상력을 얻기를 바랍니다.”
그림책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전한 쇼의 조언. “자신이 첫 번째 독자라는 생각으로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세요. 누군지도 모르는 독자의 기대에 맞추다 보면 틀린 길로 갈 수 밖에 없어요. 그림 그리는 것도 멈추지 말고요. 누구와 비교하지도 말고, 주눅도 들지 마세요. 그냥 그렇게 계속 그리세요.”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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