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비, 북미 담판 등 주한미군 변수 많아
현실화때 사회분열 감당할 수 있을지 우려
보수ㆍ진보진영 최소한의 공감대 형성 필요
지난해 초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가 주한미군 철수 관련 발언을 했다 융단폭격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남북대화가 막 움트던 시점이어서 돌출적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주한미군 문제는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왔다. 더 이상 ‘판도라의 상자’로 남겨 둘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현재 주한미군 문제를 가장 앞서 끌고 나가는 사람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지난해 북미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언젠가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싶다”고 했을 때 놀랍긴 해도 먼 장래의 일로 여겼던 분위기가 밥 우드워드의 책 ‘공포’가 출간되자 싹 바뀌었다. 2017년 7월 북한이 새벽에 탄도미사일을 쏘아대던 무렵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한국에 주둔 중인 군대를 전부 집으로 데려오라”고 다그쳤다니 말이다. 그의 주한미군 철수론이 단순 엄포가 아니라는 게 분명해졌다. 트럼프를 뜯어말렸던 매티스 전 국방장관 등 ‘어른들의 축’도 모두 사라졌으니 이제 더 거칠 것도 없어졌다.
신고립주의와 중상주의에 꽂혀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주한미군은 전략적 가치 이전에 ‘돈이 너무 많이 드는 기지’일 뿐이다. 미군 해외기지 실태를 연구해 온 데이비드 바인 미국 아메리카대 교수는 저서 ‘기지국가’에서 전 세계 미군기지는 800여개로, 운용에 연간 1,000억달러가량 소요된다고 추산했다. 미 정부의 천문학적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국방비 감축이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트럼프에게 주한미군은 주요 타깃 중 하나인 셈이다.
난관에 빠져 있는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주한미군의 현 상황을 보여 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미국의 요구액이 낮아지긴 했지만 설사 한국이 분담금을 2배로 올려 주어도 트럼프를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한국의 분담금을 “껌값 수준”이라고 했던 트럼프에게는 “주둔비를 한국이 다 내거나, 아니면 주둔군을 빼거나’ 외에는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을 것이다.
북미 담판도 변수다. 외교가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 비핵화를 독려하는 보상으로 주한미군 감축 카드를 꺼낼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북미협상에서 획기적인 성과가 나오면 주한미군에 변화가 오리라는 건 예상 가능한 일이다. 가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의 구체적인 방식과 대상, 시한을 제시한다면 트럼프도 이에 걸맞은 상응조치로 주한미군을 들고 나올지 모른다.
중국 견제와 대응이라는 전략적 가치를 들어 주한미군 변화 가능성을 부정하는 견해가 적지 않지만 꼭 그렇게 볼 수만은 없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가치는 과거 냉전 시절 서방세계의 최우선 방어기지 역할을 할 때보다는 낮아졌다. 북미관계가 개선되면 중국 견제와 동아시아 전략상 역할을 주일미군의 보강을 통해 대체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다. 주한미군의 본질적 변화를 초래할 상황이 다가왔는데도 우리 사회의 논의는 거의 진행되지 않고 있다. 주한미군을 털끝만큼도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주장만으로 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고 보는 건 순진하다. 내구력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주한미군 변화가 닥칠 경우 우리 사회가 막대한 충격파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미국의 지속적인 방위비 압력 요구를 어디까지 수용할 것인지, 평화협정 체결 후에도 주한미군 주둔이 필요하다면 어느 정도이고 역할은 어떠해야 할지, 또 그 정당성을 어떻게 확보하고 미국을 설득해 나갈 것인지를 보수와 진보 진영이 해법을 제시해 최소한의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주한미군은 비핵화와 관련없고 한미양국이 결정할 문제”라고 밝혔지만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의 움직임을 보면 낙관적 전망에 갇혀 있을 때가 아니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는데도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의 미래에 대한 논의나 준비 없이 있다가 미국의 독단적 결정에 끌려다니는 결과를 초래하는 상황이다. 현실을 부정하고 피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진 않는다.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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