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생 산 성 박 사(5)
길브레스 저
오일로(吳一路) 역
언덕을 넘어서
금요일 밤에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강연회나 영화구경을 둘이서 같이 가는 일이 많았다. 자가용 차고까지 사이좋게 손을 맞잡고 가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토요일 밤에는 어머니는 어린애들하고 집을 지키고 큰 아이들은 아버지를 따라 영화구경을 간다. 나갈 때는 영화 제1회 상영이 시작되는 7시에 당열(當列)할 수 있도록 일찍암치(*일찌감치) 식사를 한다,
“오늘밤은 한 번뿐이다, 응.” 하며 아버지는 가는 도중에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두번째를(*한 번 더) 본다고 조르는 일이 없도록. 사달라고 졸라데지(*졸라대지) 않을 것.”
영화가 한번 시작하면 아버지는 우리와 같이 열중하여 버리는 것이었다. 우리들 일은 생각하지도 않고, 좌석 뒤의 과자[캰디-(*candy)] 자동판매기에 넣는 잔돈을 졸라데도 좀체 알은체를 안한다. 희극을 보면 너무 큰 소리로 웃기 때문에 우리들은 모두 기분이 나빠 “모두들 보고 있어요!” 하며 주의시키는 일도 있다. 슬플 때는 코를 벌럭벌럭 덜머거리고(*들먹거리고) 자꾸 눈을 부빈다.
제1회가 끝나서 전등이 켜지면 우리들은 다시 한 번 더 보자고 아버지를 졸라댄다.
처음에는 완고하게 승낙을 안 하지만, 결국 아버지는 우리들에게 항복하고 만다.
“그래그래. 이번 주에는 다른 때보다 점잔하구나. 착한 아이들이었어! 그러나 밤늦게까지 자지 않는 것은 좋지 못한 일이야.”
“내일은 일요일이예요. 늦잠도 잘 수 있지 않아요?”
“아버지가 너희들을 밤늦게 다리고(*데리고) 가면 어머니한테 야단맞는다.”
“아버지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어머니두 그렇게 생각하실 껄요?”
“음 그래. 좋아좋아, 오늘만은 예외로 하자. 이 영화가 퍽 맘에 드는 모양이군. 한 번만 더 보기로 하자.”
어느 때(*의 일이다.) 속삭이는 전달 소리가 아-네스틴한테서 전해지자, 영화의 제1회가 끝난 때 모두 코-트를 들고 한꺼번에 열을 짓고 통로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너희들은 어데(*어디) 가는 거냐.” 하며 아버지는 불쾌한 듯이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가 너무나도 컷기(*컸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모두들 일어섰다.
“대체 어데로 간다는 거야. 걸어서 갈 셈이냐? 여기 그대로 앉아 있으렴.”
우리들은 여기 오는 도중 오늘밤은 1회만 보기로 하지 않았느냐고 대답한다.
“한 번 더 보고 싶지 않나? 너희들은 이번 주일 동안 참 착한 아이들이었어. 영화가 마음에 들면 아버지도 한 번 더 봐도 좋단다. 아버지는 염려말구, 너희들 보고 싶으면 더 보렴.”
그러나 좀 졸리구 내일 피곤하면 안될 뿐만 아니라 너무 늦게 돌아가면 어머니께서 걱정하실 꺼라고 입을 모아 대답했다.
“그러지 말고 여기 있어. 모처럼 즐겨보려고 나왔는데 기분을 깨면 되니? 어머니가 걱정한다는(*걱정하는) 것은 아버지가 책임질 테니, 한 번 더 보고 가자. 아즉(*아직) 초저녁이다. 내일은 일요일이 아니냐. 늦잠 자도 좋아.”
우리들은 계략이 들어맞아 할 수 없다는 듯이 자리로 돌아왔다.
“장난꾸러기들 같으니.” 아버지는 우리들이 좌석에 앉은 다음 중얼거렸다.
“너희들은 아버지를 못살게 졸라대 놓고서는 이제와선 무슨 짓이야. 다음 주에는 집지키기다. 아버지 혼자 올 테다.”
아버지가 제일 인상을 받은 영화는 ‘언덕을 넘어서’라든가 하는 12권짜리의 영화였다. 그 줄거리는 아이들을 위하여 몸을 돌보지 않고 일을 한 끝에, 그 아이들에게 배반당하여 양로원에서 죽어간 야위고 체구가 작은 과부의 이야기었다. 그 과부가 가족을 길르기(*기르기) 위하여 일심불란(一心不亂)으로 일을 하는 것을 보고, 한 시간 반 동안 아버지는 자주 손수건으로 코를 닦았다. 가련한 모친은 쉴 사이 없이 빨래를 한다. 한정없이 쏟아져 나오는 하의의 다림질. 언제고 홀로 일하면서 조력(助力)해주는 사람없이 때로는 업드려서(*엎드려서) ‘그랜드·센트랄·스테이숀’(*Grand Central Station)의 타구통(唾口桶)을 소제(掃除)하고 복도를 닦는 어머니! 어린애들은 가난한 어머니를 부끄러웁게(*부끄럽게) 생각하여 가게에서 산 옷을 입혀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한다. 아이들이 성인(成人)하여 결혼한 뒤는(*뒤에는) 집안일을 돌보게 하기 위해서 제마다(*저마다) 저희들 집으로 끌어간다. 그러나 나이가 많아져서 그런 일도 할 수 없게 되니까 자식들은 어머니를 축출해 버린다. 밖에서 눈바람이 휘몰아친다. 아버지가 눈물을 짜내고 흐느낀 것은 이 노모가 낡아서 산산히 헤어진 목도리를 감치고 바들바들 떨며, 언덕을 넘어서 양로원을 향하여 절름바리거름(*절름발이걸음)으로 더듬더듬 걸어가는 장면이었다.
영화가 끝나서 소-다수를 먹고 있을 때에도 아버지는 아즉도(*아직도) 코를 닦고 있었다. 우리들도 기분이 침울하였다.
“꼭 약속해다오.” 아버지는 숨을 멈춘다.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드래도(*일어나더라도) 너희들은 어머니를 잘 돌보아드려야 된다.”
우리들은 물론 그렇게 하겠다고 맹서(盟誓)했다. 그걸 보구서는(*보고서는) 아버지는 조곰은(*조금은)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뒤 몇 달이 되어도 아버지는 그 영화를 잊지 못했다.
“20년 후의 내일이 눈에 선연한 것 같다.”
아버지는 우리들이 용돈을 인상해줄 것을 청구하면 이런 말을 한다.
“나이를 먹고 한 푼 돈이 없이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아 저 언덕을 터벅터벅 올라간다. 양로원 같은 데서는 어떤 것을 먹고 있을까? 그리고 늦잠을 자게 해주나 모르겠다.”
영화도 영화려니와, 아버지는 자기와(*당신과) 어머니를 위하여 우리들이 응접실에서 연출하는 한 해에 한 차례나 두 차례의(*차례 하는) 연극을 낙으로 삼고 있었다. 그것은 안과 아-네스틴이 쓴 짤막한 풍자극인데, 언제나 거의 같은 것(*내용)이었다. 때문에 언제든지 연습도 하지 않고 상연할 수가 있었다. 아버지가 좋아한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흉내를 내는 장면이었다.
후렝크는 쓰봉(*jubon) 혁대 아래 긴 의자용 쿳숀(*cushion)을 두 개쯤 쑤셔 넣고 보릿대모자(*밀집모자)를 비스듬히 쓰고 상담역을 하고 있는 공장을 안내하는 아버지 역을 하였다. 아-네스틴은 가슴에 아무거나 쑤셔 넣고 꽃 문의(紋儀;*무늬)가 달린 모자를 쓰고 어머니 역을 하는 것이다. 안은 공장감독 역, 다른 적은(*작은) 아이들은 그대로 자기를 연출한다.
“다들 모였나?” 하며 후렝크가 아-네스틴에게 묻는다. 그러면 (*아-네스틴은) 수첩을 펴내서 출석을 부른다.
“다들 용의(用意)가 다 되었나? 수첩은 다 준비되었나? 그럼 좋다. 딸아오렴(*따라오렴).”
후렝크를 선두로 아-네스틴, 그 뒤는 나이순으로 서서 마치 죄수들처럼 방 한가운데를 두 번쯤 돈다. 그리고선 공장에 들어서는 것을 표시하기 위하여 계단을 올라가는 시늉, 그러면 감독의(*감독인) 안이 문 앞에 나와서 후렝크와 악수를 한다.
“이게 다?(*다 뭡니까?) 당신을 딸아온(*따라온) 것은 대체 무엇입니까? 당신 애들입니까? 그렇치 않으면 소풍입니까?(*아니, 소풍이라도 온 겁니까?)”
“우리집 애들이지요. 소풍은 아닙니다.” 하며 아-네스틴이 골이 난 표정을 한다.
“이 조곰한(*조그만) 몽고인들은 어떻습니까.(어때 보이십니까?)” 후렝크는 곁눈질로 감독을 본다. “몽고인들은 다-스로는 값이 싸지지요. 다들 길러놓는 것이 좋을까요?(*더 키우는 게 좋은 건지 모르겠네요.)”
“다들 댁에 놔두는 것이 좋습니다.” 하며 안이 말한다. “우리 공장 기계에 올라가지 않도록 주의시켜 주시지요.”
“설마 부스지는(*부수지는) 않겠지요.” 후렝크가 보증한다.
“이 애들은 충분히 훈련된 기사(技師)들이니까요. 내가 훈련시켰지요.”
안이 깜짝 놀라 소리지른다.
“저거 봐! 저 작은 몽고인이 우리 공장 기계에 올라가 앉았어.” 안은 눈을 가린다. “어서 중지시켜요. 저 애가….”
“저 장난꾸러기는 저것이 자전차인 줄 아는 모양이야.” 하며 후렝크가 말한다.
후렝크는 후렛드를 향해서 “이 드릴·프레스(*drill press)에 대해서 비생산적인 점을 감독에게 설명해 드려라.”
“하하, 이것이 드릴·프레스입니까?” 하고 후렛드는 더듬더듬 말한다.
“정확히 간단하게 설명하시요.” 하며 후렝크가 말한다.
“이런 지레의 위치로서는 ‘운반’과 ‘공수’(空手)의 양 동작에 낭비가 생긴다.”고 후렛드가 혀 짜른(*혀 짧은) 소리로 말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 높이로 일을 한다면 피로가 심하다. 그리고….”
때로는 공회당의 강단에서 아버지가 강연하는 기술자의 집합장면을 연극한다. 안이 의장이고 먼저 아버지를 소개하는 데서부터이다.
“다음 강연자는 후렝크·방카-·길브레스(*Frank Bunker Gilbreth) 씨입니다. 잠간 기다리십시요. 자리에 앉으신 데로(*채로) 좋습니다(*들으시면 됩니다). 너무 놀래지 마십시요. 오늘의 강연은 여하한 일이 있드래도(*있더라도) 2시간 이내로 한다고 길브레스 씨는 언명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유일 최상의 작업방법’이란 말을 같은 구절 중에 두 번 이상 되풀이하지 않는다고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例)와 같이 복부에 쿳숀을 집어넣은 후렝크는 강단 끝까지 나가서 목에 건 까만 리봉(*ribbon)에 매어 있는 코안경을 걸고, 상긋 웃으며 상의 호주머니에 손을 넣은 다음 두끼(*두께가) 7인치나 되는 서류를 꺼낸다.
“편의상―” 하며 후렝크는 점잔을 빼면서 시작한다. “저는 강연을 30개조의 주요 제목으로 논아서(*나누어서), 그것을 또한 117의 세목으로 분류하여 가지고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제1의 제목은….”
이때 청중의 기사(技師)가 되는 다른 아이들은 서로 소군소군 옆구리를 지르며(*찌르며) 일어서서 살금살금 방을 나가버린다. 아버지는 텅 빈 방에서 흥미없는(*신경쓰지 않는) 듯이 강연을 계속한다.
겨우 강연이 끝나고 후렝크가 자리에 앉으면 청중들도 건들건들 돌아와서(*돌아오고) 의장이 아-네스틴이 분(扮)하는 어머니를 소개한다.
“다음은 리리안·모라·길브레스(*Lillian Moller Gilbreth) 박사가 나와 주셨읍니다. 박사는 강연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던 질문에는 대답하신답니다.”
아-네스틴은 청중 중의 친구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 꼬박 1분을 만면에 웃음을 띠우며 애교를 뿌린다.
“어쩌면! 그레스(*Grace)부인, 당신 새 모자는 참 멋지기도 하지. 아이 참, 데니(*Denny)부인 머리털을(*머리를) 짜르셨군요. 저기 샤롯트(*Charlotte)부인도 참 잘 오셨습니다.”
어머니 모자란 모자는 있는 데로(*대로) 다 끄집어내서 쓰고 있는 마-사, 후렝크, 빌, 리루는 일제히 질문을 던진다.
“길브레스 선생, 당신은 참말로 대가족이 좋으십니까?”
“그밖에 무슨(*다른) 질문은?”
“댁은 대체 처시하(妻侍下; *엄처시하)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폭군통치입니까?”
“그밖에 무슨(*다른) 질문은?”
“또 하나 묻고 싶은 일이 있읍니다. 보리비아(*Bolivia; 인디오?)인은 1다스로 싸게 됩니까?”
이러한 풍자극으로 우리는 즐거운 해를 보냈다.
유행형(流行型) 처녀기질
안양(*Anne孃)도 벌써 고등학교 상급생이 되었다. 아버지는 시대 유행형 처녀기질이란 머리기름을 반지르하게 바르고 멋만 내는 사내녀석들과 요란스럽고 십중팔구는 고상하지 못한 밀회를 즐기고 싶어, 루-쥬(*rouge)를 샛빨가케(*새빨갛게) 칠하고 양말을 무릅(*무릎) 위까지 걷어 올리고선 덮어놓고 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청춘의 불꽃은 벌써 타기 시작하였다. 모던·보-이(*modern boy)와 모던·껄(*modern girl)이 공개적으로 사이좋게 장난질을 하고 다니는 시대이고, 모던·껄은 앞가슴을 열어 재치고(*제치고) 다리를 들어낸 쇼-트·스카-트(*short skirt) 식의 얄구진(*얄궂은) 모양이 유행하는 시대였다. 모던·보-이는 무엇인지 모르나 뒷등에 잔뜩 써부친(*써붙인) 노란 레잉·코-트(*raincoat)를 입거나, 대학 우승기나 나팔(喇叭)쓰봉(*jubon이) 유행의(*유행하는) 시대였다. 처녀들 사이에는 단발이 유행하기 시작하고, 사내녀석들은 포마-드(*pomade)로 머리를 번쩍거리고 다녔다. 대학생의 시세는 굉장하여서 대학생이란 말 자체가 미국어 중에서 가장 듣기 좋은 말이었다. 자동차는 선(線)이 든 T형 포-드(*Ford)차가 대인기였다. 세상은 바야흐로 째스(*jazz) 시대의 여명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만약 전 세계 인구가 모두 광기 사태를 원한다면 서글픈 일이지만, 그것도 자유리라. 그러나 아버지는 자기 딸만은 그런 무리들하고 같이 섞여놓고(*섞어놓고) 싶지는 안았다(*않았다). 적어도 가만있을 수는 없었다.
“도대체 요즘 계집아이들의 놀아나는 꼴이란 뭣이냐 말이야?” 아버지는 입이 쓰도록 말하는 것이었다.
“머리만 반들반들 다듬고 다니는 녀석들이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너들은(*너희들은) 모른단 말이냐? 다리는 명주양말로 환하게 들여다보이지, 무릅(*무릎)은 그대로 드러내놓는 쇼-트·스카-트로 약간 바람만 불어도 송두리체(*송두리째) 다 노출되는 광태(狂態)로 이리저리 해매고(*헤매고) 다닌다면, 어떻게 된다는 것인지 계집애들에게는 알 수가 없다는 것이야?”
“그래두 요즘은 누구든지 그런 차림을 하고 있는데요, 뭘,” 하며 안이 강경히 방어한다.
“아-네스틴과 저를 빼놓고는 모두 다 그렇게 하는데요. 학교에서는 우리들만 별난 사람 취급이예요. 누구든지 요즘 유행을 따르고 있는데요. 시대에 뒤떨어진 우리들을 어느 사내가 것떠(*거들떠) 봐주겠어요?”
“사내녀석들 같은 것은 어떻게 되든 무슨 관계야?” 하며 아버지는 못마땅한 표정이다.
“아버지는(*아빠는) 그런 녀석들이 어떤 것에 흥미를 갖고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빤히 알고 있단 말이야. 그런 대학생들의 근성은 거울알(*투명거울) 같이 들여다보인단 말이야. 지금 한창 야단들인 연애 노름(*놀음)이나 째스의 광풍 따위는 옛날부터 있기는 하였지만, 고상한 인간은 그것을 문제로 삼고 그런 데 관계를 하지 않았던 것이야. 아버지 시대에 여학생들이 그런 채림새(*차림새)를 하고 학교에 나타나는 날에는 무슨 일을 당하게 되는가 참아(*차마) 입으로는 표현할 수 없어.”
“무슨 일을 당하게 되었나요?” 안이 정색으로(*정색하고) 묻는다.
“아니, 무엇이든지(*뭐래도) 좋아. 아무리 자존심이 강한 밤거리 여자들이래두 그런 복장만은….”
“여보!” 하며 어머니가 가로 막는다.“그런 애스키-모(*Eskimo)어는 삼가 주시는 것이 좋겠어요.”
모두들 이때라고 어머니와 합세하는 것이었으나, 결국은 아버지 의견대로 되어버리는 어머니였다.
“좌우간 착실한 남자는 매키엎(*makeup)을 하거나 하이·힐을 신는 여성들과는 결혼하기 싫어하는 것이야.”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그런 것은 결혼 전의 장난이예요. 막상 처를 찾아내려고 할 때는 자기가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을 고르게 되는 것이지요.”
“정말 존경해주어요(*존경 받긴 해요).” 하며 안은 울상이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으뜸가는 존경받는 존재여요. 저는 이렇게 받들어주지 않아도 좋으니, 좀 더 사귀어주면 좋겠어요. 이런 꼴로 어떻게 대학생 사이에(*사이에서) 인기를 찾이할(*차지할) 수 있을까?”
“뭐? 화제꺼리 여성이라구?” 아버지는 버럭 질르기(*지르기) 시작이다.
“인기여성, 인기여성, 그저 그런 것밖에 생각하지 않는군 그래. 과연 그건 매력 있는 말이기는 하지. 요즘 세상에 젊은 것들이 열중하는 것이겠지. 그러구는 조금이라도 정신 차리고, 상냥하고 사람을 끄는 여자가 되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는 것이지? 그저 날씬하고 평판만 좋으면 만사 O·K라? 그런 따위는 인기를 얻기 위해서는 마음이나 몸을 모조리 바치는 것이겠지. 너희들은 그런 일은 없어요 할찌(*할지) 모르나, 십중팔구 그런 거야.”
“학교에서는 우리들뿐이예요. 명주양말을 신을 수 없는 건요.” 하며 아-네스틴은 투덜거린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명주양말을 신도록 해주시면, 긴 스카-트나 구식 구두나 귀덮게(*귀덮개) 같은 것은 참아나가겠지만….”
“뭐라 해도 소용없어.” 아버지는 쾅 하고 탁자를 쳤다. “결국은 수도원 행이야. 그것이 (*차라리) 좋을 꺼야. 명주양말이란 말도 내지 말아. 지금부터는 명주양말 이야기를 한 마디도 해서는 안 된다. 한 마디라도 한다면 수도원으로 보내버릴 테야. 알았나?”
수도원 운운은 아버지가 자주 쓰는 위협 문구였다. 아버지는 수도원의 규칙서까지도 모아놓고 있었다. 식당 테-블 위에는 2, 3종류의 수도원 규칙서가 항상 놓여 있어서 큰 계집아이들에게 무슨 잔소리를 할 때며는(*때면) 그것을 뒤적거리거나 들고 추껴올리거나(*추켜올리거나) 한다.
안이나 아-네스틴이 확실히 듣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한다. “알바니-(*Aalany) 부근에 제법 좋은 수도원이 있는 것 같애. 이 규칙서에는 수도원 담은 12피-트의 높이고, 생도들은 아홉 시에는 반듯이(*반드시) 취업하도록 엄중한 수도녀가 감독한다고 써 있군. 보스톤 것보다 좋은 것 같군. 그쪽 담은 겨우 10피-트밖에 안되니까 말이야.”
안과 아-네스틴이 제일 싫어한 귀덥게는 5, 6년 전 형으로 아직 단발을 하지 않은 구식 처녀들이 그런 식을 사용하고 있었다. 긴 머리털은 앞으로 묶어서 두 갈래의 뭉치를 만들어 귀 옆구리에 3인치 가량 튀어나오도록 머리털을 세우기까지 하여 땃는(*땋는) 것이다. 만약 머리수가(*머리숱이) 적어서 그런 묘술을 할 수 없을 때에는 무슨 꼬지(*꽂이)를 안에 틀어넣어서 귀덥게를 억지로라도 만드는 것이다.
안은 도저히 신식 유행 옷감으로 아버지 허가를 얻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제는 자기 손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자신이 솔선하여 새로운 길을 열어주지 안는다면(*않는다면), 아-네스틴을 비롯한 다른 누이동생들이 해방될 기회란 없을 것이라고 어느 정도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 안은 막둥이 젠이 15년 후에도 여전히 양쪽 귀에 머리덥게(*머리덮개)를 달고, 길고 두터운 겨울용 즈로-즈(*drawers)를 입은 위에 두터운 양말을 신고 있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나는 이제는(*이제부터) 수도원에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안에게(*안이) 말한다. “12피-트의 담벽이 있는 알바니의 수도원에 말이야.”
조곰(*조금) 지나 안은 가위를 한 손에 들고 여자용 세면소로 들어갔다. 나올 때의 모습으로 말하면, 머리털을 담북(*담뿍) 잘라내고 뒤는 문지러(*문질러) 버렸지 않는가. 아무리 보아도 모양 있게는 안 되었지만, 겨우 짧게는 되었다.
식사 때 드디어 아버지에게 들켰다.
“다음부터 그런 꼴로 다시는 이 자리에 나오지 말아.” 아버지의 폭발이다.
“벌써 잘라내었어요(잘라버렸어요). 견딜 수 없어요.(*없어서,) 잘랐어요.”
“아버지! 단발은 아주 생산적이예요. 저는 이 머리를 닷는(*땋는) 데 10분 걸리지만, 안 머리는 15초밖에 안 걸려요.” 아-네스틴의 찬조연설이다.
“그전대로 머리털을 길러야 되(*돼). 듣고 있나?”
안은 필사적으로 전선을 유지하려 했으나, 연합군의 공격에 견디다 못하여 드디어 울음이(*울음을) 터졌다(*터트렸다).
“우리집 식구는 아무도 저의 일을 몰라주어요.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났겠어요(*낫겠어요). 하며 훌쩍거린다.
“저도 단발은 싫지 않습니다. 확실히 머리를 빗질하는 시간의(*시간이) 절약이 됩니다(*절약됩니다). 그러나(*그런데) 당신은 싫다고 하니 답답해요.” 어머니의 호소한(*호소) 한마디가 주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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