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미국립보건원(NIH)에서 진행하는 ABCD 프로젝트는 10대 청소년기의 뇌인지 발달을 연구하는 대규모 장기 연구다. 청소년에게 나타나는 여러 행동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이런 경험이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찰하는 연구다. 미국 21개 센터에서 1만2,000여명의 9~10세 청소년을 추적 관찰하고 있다.
이 연구팀에서 얼마 전 스마트폰이나 비디오게임을 하루 2시간 이상 한 청소년의 사고나 언어능력이 저하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특히 하루 7시간 이상 스마트기기를 사용하는 아이들의 뇌 자기공명영상(MRI)을 촬영한 결과, 시각ㆍ청각ㆍ촉각 등 감각기능과 관련 있는 뇌 피질의 두께가 정상보다 줄었다고 한다. 그동안 스마트기기 사용의 유해성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과도한 스마트 기기 사용이 뇌 발달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한 것이다.
일부 과학자들은 현대사회에서는 스마트기기가 모든 인간의 뇌를 녹이고 있다고까지 극단적으로 경고했다. 하지만, 이번 결과는 4,500여명을 관찰한 단기 예비연구이고, 장기연구는 아직 진행 중이다. NIH는 올해 중 최종 연구결과를 모든 연구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하니, 결과가 자못 궁금해진다.
대뇌피질은 뇌의 가장 바깥쪽 회백질 부위로, 신경세포 몸체가 있는 곳이다. 사고ㆍ언어ㆍ기억이나 의식 같은 고위 인지기능과 관련 있는 부위다. 대뇌피질이 얇아진다는 것은 피질이 위축돼 뇌 기능 저하는 물론, 나이 들수록 진행되는 노화현상과 비슷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2016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조사한 청소년 스마트폰 사용실태를 보면, 청소년의 하루 평균 스마트폰 이용시간은 4시간47분이어서 우리 청소년 역시 뇌 피질 위축이 많이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된다.
뇌가 외부 자극에 의해 변화하는 현상을 뇌가소성(plasticity)이라고 한다. 반복적인 자극이나 학습으로 뇌 기능이나 구조가 바뀌게 된다. 뇌가소성과 관련된 유명한 연구가 영국 런던의 택시운전기사들의 뇌를 연구한 것이다. 운전을 오래할수록 해마 부피가 더 크다는 것을 알아냈다. 런던처럼 오래된 도시는 골목길도 많고, 지역이 복잡해 운전경력이 많을수록 지역을 잘 기억해낸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기억력과 관련 있는 해마부위가 발달한 것이다. 요즘처럼 내비게이션이 보편화돼 굳이 장소를 외울 필요 없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뇌 구조가 과거와 다르게 변화됐을 가능성이 크다.
뇌를 많이 변화시키는 또 다른 방법은 운동이다. 운동하면 뇌가 자극받고 자극 받은 뇌는 발달한다. 꾸준히 운동하는 사람의 뇌 해마부위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유의하게 늘어난다. 특히 운동하면 뇌에서 BDNF라는 뇌신경세포를 재생하는 호르몬이 분비돼 뇌세포 재생을 돕는다. 알츠하이머병ㆍ조현병ㆍ다발성경화증 등의 환자에게 운동이 재생에 도움 된다는 연구도 최근 많이 발표되고 있다.
이런 모든 것이 뇌가소성과 관련된 현상이다. 뇌가소성은 나이가 어릴수록 쉽게 나타난다. 어릴 때 좋지 않은 반복적인 자극에 의해 뇌가 형성되면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많은 문제를 적절히 해결하기 어렵게 된다. 스마트기기에 대한 미국소아과학회의 가이드라인에서는 18~24개월 아이에게는 사용하지 말고, 꼭 사용해야 한다면 검증된 프로그램을 사용하면서 자녀가 혼자 사용하지 말도록 했다. 2~5세 아이에게는 하루에 1시간 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잠자기 1시간 전에는 사용을 금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물론 이번에 발표된 ABCD 연구결과가 예비 연구결과이고 이런 결과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한다. 또한 장시간 스마트폰에 노출된 아이의 대뇌피질 두께가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더 빨리 얇아졌다고 해서 나쁘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려선 안 된다. 하지만 한창 뇌 발달이 중요한 아이에게 수동적으로 스마트폰을 보게 하는 것보다 사람 관계나 운동 등 긍정적인 자극으로 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하는 것이 아이 장래를 위해 더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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