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프랑스나 스페인을 찾지 않아도 서울에서 피카소 판화를 엿볼 수 있는 상설 전시관이 문을 열었다. 피카소의 작품만을 다루는 미술관이 국내에서 시도된 것은 처음. 서울 종로구 피카디리 4층에 마련된 ‘피카소 전용 미술관’ 이야기다.
미술관은 우선 피카소의 많은 작품 가운데 ‘판화’에 집중했다. 피카소는 2,500여점의 판화를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볼라르 판화’ 99점이 전시된다. ‘볼라르는’ 파리의 화랑업자였던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성으로, 피카소가 1901년 프랑스 파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 수 있도록 해 준 인물이다. 이 컬렉션은 주로 사랑, 신화를 주제로 한다.
전시에 나온 작품에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수 ‘미노타우로스’가 자주 등장한다. 미노타우로스가 술 잔을 든 채로 여성과 비스듬히 누워있는 모습이라든가, 비둘기나 들꽃을 든 소녀에게 이끌리는 모습 등이 대표적. 피카소는 생명력이 넘치면서도 야만성 때문에 미궁에 갇혀 사는 미노타우로스를 자신을 상징하는 동물로 여겼다고 한다.
다른 조각가들이 작품에 열중하는 모습을 담은 판화들도 눈에 띈다. 1930년대 조각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피카소는 작가들의 작업실을 자주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판화 속에는 조각가뿐만 아니라 그들의 작품과 모델까지도 상세하게 묘사된다.
미술관은 월 1만명의 청소년들에게 무료 관람 기회도 제공한다. 경제ㆍ사회적 어려움 때문에 예술과 문화에 소외되는 이들을 돌본다는 취지다. 아동ㆍ청소년을 위한 그리기ㆍ만들기 체험 프로그램도 준비했다.
볼라르 판화전은 4월9일까지다. 이후에는 ‘게르니카 판화전’을 비롯해 피카소 작품을 상설 순환 전시할 예정이다.
◆강추: 솔직하고 익살스러운 피카소의 판화를 기대한다면.
◆비추: 피카소 특유의 다채로운 색감을 기대한다면.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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