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 일본과의 경기 앞둔 베트남 현지 분위기

 “일본도 이길 수 있다” 기대 충만 
작년 1월 23일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준결승전에서 베트남이 카타르를 꺾고 결승에 진출하자 호찌민 시내 한 맥주집에서 응원을 하던 시민들이 일제히 일어나 감격해 하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랭킹 50위인 일본과의 경기를 앞두고 있는 베트남의 분위기는 이전과 좀 다르다. 지금까지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에 일으킨 축구 열풍에도 ‘목석’처럼 남아 있던 계층까지 TV 앞으로 몰려들고 있다. 베트남 축구의 최대 ‘무관심층’은 경제 활동과 함께 가정까지 챙겨야 하는 중장년 여성들. 하지만 일본전을 앞두고 이들의 관심과 적극적인 경기 시청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두드러진다.

 ◇ 축구 열풍 전세대로 확산 

한 물류회사에서 회계 업무를 보고 있는 레 티 푸엉(여ㆍ37)씨는 “과거에 매번 지는 경기에 실망해서 축구를 잊고 산 지 오래됐다”며 “하지만 오늘은 일찍 집에 가서 가족들과 경기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태국이 16강에 나란히 올랐지만 8강 진출에는 실패, 베트남이 동남아를 대표해서 갖는 경기가 의미가 더욱 크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제약회사 영업업무를 하고 있는 호앙 안 투(여ㆍ35)씨도 “일본팀이 강한 것은 잘 알고 있지만, 100% 열정과 베트남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팀인 만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며 귀가를 서두를 것이라고 말했다. 투씨는 특히 “축구에는 도통 관심이라곤 없던 어머니도 이제 중계 방송 시간을 챙겨가면서 시청한다”며 “박 감독이 많은 여성들을 축구팬으로 ‘전향’ 시켰다”고 말했다.

박 감독의 지도 아래 매번 기록을 새로 쓰고 있는 베트남 축구가 전국민적 인기와 기대를 받자 식품대기업 마산(Masan)은 자사의 인스턴트 커피 ‘Wake-up 247’을 후원자로 내세워 경기가 열리는 아랍에미리트(UAE)로 일단의 기자들을 이날 오전 일찍 보내기도 했다. 축구에 대한 관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기자들이 현장을 지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기자들이 탄 비행기에는 축구 팬과 선수 가족들도 동승했다.

 ◇ 쏟아지는 ‘박비어천가’ 

스포츠 평론가로 활약하고 있는 쩡 안 응옥 기자는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 하나를 올렸다. “베트남이 8강에 오른 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아침 6시 방송에 나갔는데 ‘죽을 만큼 행복했다’는 말을 한 것밖에 기억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시작해 “오랜 시간 슬픔과 열패감 속에 살던 베트남 축구 팬들을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한 박 감독에게 감사 드린다”는 말로 마무리 하는 글이었다.

사실 이것은 그가 지난 8일 올렸던 것과는 180도 다른 것이다. 그는 베트남팀이 이라크와의 경기에서 전반전 선제골을 넣은 것을 시작으로 경기를 2대 1로 리드하다 후반 막판에 두 골을 내주면서 패하자 “이라크는 훌륭한 경기를 보여주지 못했고, 그래서 우리가 충분히 이길 수 있었지만, 박 감독의 부실한 전략으로 베트남이 졌다”고 박 감독을 비난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쩡 기자는 “영웅이라는 말로도 충분하지 않다. 박 감독에게 명예 시민권을 주고, 그가 원한다면 국적도 주라”며 사실상 ‘용비어천가’ 수준으로 박 감독을 치켜세웠다. 13만5,000여명의 팔로어를 거느리고 있는 그의 이 글은 24일 현재 178개의 댓글과 함께 공유 37회를 기록 중이다.

문제는 오늘 밤이다. 지금까지 운이 있었다면 운이 있었지만, FIFA 랭킹 50위의 일본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점이다. 베트남은 지금까지 일본 국가표팀과 두 차례 맞대결을 펼쳤지만 전패했다. 지난 2007년 7월 16일 열린 아시안컵 조별리그 경기에서 1대 4로 대패했고, 2011년 10월 7일 평가전에도 0대 1로 졌다.

지난해 1월 23일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준결승전 당시 길을 가던 시민들이 오토바이를 길가로 세운 뒤 한 맥주집 대형 스크린으로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그로부터 꼭 1년 만인 24일, 베트남은 아시안컵 8강전 일본을 상대로 한 경기에서 새로운 역사를 쓸 준비를 하고 있다.
 ◇ 동남아 왕, “일본 꺾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승산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축구전문 쩐 득 쩡 기자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 등 토너먼트 초반부터 일본은 FIFA랭킹 50위라는 사실을 믿기 힘들 정도의 경기를 펼쳤다”며 “지금까지의 분위기를 보면 베트남이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오늘은 베트남 축구사에서 역사적인 날”이라며 “일본을 이기면 아주 멋진 일이 되겠지만, 지더라도 베트남 축구가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의 ‘왕’이라는 것에 의심의 여지는 없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경기를 볼 때 베트남이 기술적으로나 전술적으로 아세안의 최강자인 태국보다 한 수 위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실제로 베트남은 지난해 1월 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 준우승을 시작으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4강 진출, 아세안축구연맹(AFF) 챔피언십(스즈키컵) 우승 등을 이끌었다. 메이저대회인 아시안컵에서도 신화는 이어졌다. 이란, 이라크, 예멘 등 강팀들과 한 조에 묶였지만, 예멘을 꺾고 승점 3점을 챙겨 조 3위에 올라 극적인 16강 진출을 이룬 뒤 16강에서 요르단을 승부차기 끝에 눌러 8강 무대를 밟았다.

베트남이 아시안컵 8강에 진출한 건 개최국 자격으로 출전한 2007년 대회 후 처음이다. 쩡 기자는 “2007년 당시엔 8강부터 토너먼트를 치른 점을 감안하면 오늘 이 순간이 역대 최고 성적의 순간”이라며 “오늘 밤 이 기록을 깨는 위대한 도전을 베트남 국민들이 숨죽이며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모든 거리는 텅 빌 것이란 이야기이기도 하다.

호찌민=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작년 1월 23일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준결승전에서 베트남이 카타르를 꺾고 결승에 진출하자 호찌민 시내 한 맥주집에서 응원을 하던 시민들이 일제히 일어나 감격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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