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소명, 증거인멸 가능성 법원 판단
사법부 권위 회복은 향후 재판에 달려
‘제 식구 감싸기’ 또 되풀이하지 않기를
사법농단 사건의 정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4일 구속됐다. 7개월 넘게 전ㆍ현직 법관 100여명을 조사한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에게 적용한 혐의는 40여 가지가 넘는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 등 재판 거래, 통합진보당 소송 개입, 헌법재판소 내부 정보 불법 수집, 법관 사찰 및 사법부 블랙리스트 작성 등이다. 비록 전직 사법부 수장이지만 이런 혐의를 밝히려면 구속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법원의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사상 초유의 전 대법원장 구속을 허가하면서 영장심사 판사는 “범죄 사실 중 상당 부분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며, 현재까지 수사 진행 경과와 피의자의 지위 및 중요 관련자들과의 관계 등에 비추어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사유를 밝혔다. 지난 시절 사법농단이 삼권분립을 망각하고 헌법이 보장한 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한 사건이라는 점만으로도 사안의 중대성은 소명되고 남는다.
검찰은 일련의 사법농단 행위들을 그가 지시했거나 최소한 보고받았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 출두에 앞서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사실상 무혐의를 주장했고, 조사 과정에서도 “지시를 받았다”는 후배 법관들의 진술을 거짓으로 몰아붙이는 후안무치를 보였다. 심지어 법관 블랙리스트에서 인사 불이익을 줄 판사에 ‘v’ 표시 한 것을 뒤에 조작했다고 둘러댔다니 “증거 인멸 우려”도 없지 않다.
여러 정황상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은 충분히 납득 가능한 것이다. 현 정권의 “사법부 장악 시도”라는 밑도 끝도 없는 정권 때리기만 되풀이하는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모든 여야 정치권에서 “사필귀정”이라고 입을 모으는 것도 이런 민심을 대변한다.
준엄한 법의 심판에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어쩌다 사법부의 위상이 이렇게까지 추락했는가 하는 참담한 심정도 금할 수 없다. 양 전 대법원장이 구속 수사를 거쳐 2월 중순께 다른 피의자들과 함께 재판에 넘겨지면 사법농단의 실체를 가리는 본격적인 법적 공방이 벌어진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부 구성원 모두 각자 자리에서 맡은 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만이 어려움을 타개하는 유일한 길이고 그것만이 국민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는 최소한의 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 구속 전까지 법원 영장심사는 이런 다짐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 때문에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사법농단 재판 과정에서 이런 행태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은 오직 법에 따른 공명정대한 재판을 기대하며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법원은 명심해야 한다. 그것만이 사법부가 거듭 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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