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결국 미국과의 정치ㆍ외교 관계 단절을 선언했다. 베네수엘라 주재 미국 외교관들을 향해 “72시간 내에 떠나라”라고도 요구했다. 지난해 재집권한 이후 야권뿐 아니라, 미국까지 나서서 퇴진 압박을 가한 데 대한 맞대응이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마두로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수도 카라카스 미라플로레스 대통령궁 밖에 모인 지지자 수천명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이 같이 밝혔다. 그는 “헌법에 따른 대통령으로서 제국주의 미국 정부와 정치ㆍ외교 관계를 끊기로 결정했다”며 “(미국은) 꺼져라! 존엄성이 있는 베네수엘라를 떠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미국 외교관이 떠날 수 있도록 72시간을 주겠다”고 덧붙였다.
마두로 대통령은 미국에 대한 거센 비난도 이어갔다. 그는 “미국은 베네수엘라에 대통령을 강요하는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며 “과테말라와 브라질, 칠레, 아르헨티나 등은 냉전 시기에 미국의 지원하에 좌파 정부가 무너지거나 군사정권이 집권하는 상황을 맞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정치ㆍ외교 단절’ 선언은 후안 과이도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이 이날 반정부 집회에서 자신을 과도 정부의 임시 대통령으로 선언하며 재선거를 요구한 직후, 미국이 실제로 그를 임시 대통령으로 공식 인정하자 취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베네수엘라 국회가 헌법을 발동해 마두로 대통령이 불법이라고 선언했으므로 대통령직은 공석”이라며 “나는 과이도 의장을 베네수엘라의 임시 대통령으로 공식 인정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마두로 대통령은 전날에도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자신을 비난하면서 쿠데타를 조장한다고 반발하며 “미국과의 외교 관계를 전면 재검토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미국과 베네수엘라는 지난 10년간 서로 대사를 파견하지 않는 등 외교적 갈등을 겪어 왔다.
하지만 미국뿐 아니라 미주의 다른 우파 국가들마저 과이도 의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한다는 입장을 잇따라 내놓고 있어 국제 무대에서 마두로 대통령의 입지는 점점 좁아질 전망이다. 현재까지 이러한 정부 입장을 공식 발표한 미주 국가는 브라질과 캐나다, 칠레, 페루, 파라과이, 콜롬비아,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등이다. 다만, 러시아와 볼리비아, 멕시코 등은 마두로 대통령을 계속 인정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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