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러일 평화조약 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댔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마무리됐다. 정상회담 이후 공동기자회견에선 평화조약 체결에 대한 원론적 언급만 있었을 뿐 경제협력 발표에만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올해 6월 일본 오사카(大阪)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까지 평화조약 체결 및 쿠릴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 반환에 대한 큰 틀의 합의에 이르겠다는 아베 총리 구상에 적신호가 켜졌다.
양 정상은 이날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세 시간 정도 정상회담을 가졌다. 고노 다로(河野太郎) 일본 외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등이 동석했고, 양국 정상은 이 중 50분 정도 통역만을 대동한 채 일대일 회담을 진행했다.
일본 언론들은 당초 평화조약 체결시기나 관련 조문 등 실질적 진전을 기대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1956년 소일 공동선언을 기초로 평화조약 체결을 논의키로 한 지난해 11월 정상회담을 반복하는 데 불과했다. 다만 양국은 평화조약 체결 협상 진전을 위해 내달 독일 뮌헨에서 외무장관 회담을 이어가기로 했다.
아베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전후 70년 동안의 과제 해결이 쉽지 않지만 상호 수용 가능한 해결책을 찾기 위한 노력을 강력히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매우 건설적인 회담이었다”면서도 “(수용 가능한 해결을 위해) 장기적이고 다방면에 걸친 러일관계 발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7월 참의원 선거에 앞서 평화조약 체결 및 영토 반환이란 성과를 거두려는 아베 총리와 달리, 푸틴 대통령은 장기전을 시사한 것이다.
양국 정상은 또 △양국 교역량 확대 △2023년까지 인적 교류 2배 증가 △올 여름 쿠릴 4개 섬 출신자들의 성묘 등을 성과로 발표했다. 쿠릴 4개 섬의 공동 경제활동에 대해선 “꾸준하고 신속한 진행을 위한 노력을 계속한다”고 밝혔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은 “정상 간 (평화조약 체결에 대한) 구체적 진전이 없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했고, 아사히(朝日)신문은 “아베 총리가 ‘북방영토’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러시아의 우위가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아베 총리가 쿠릴 4개 섬 중 하보마이(歯舞)와 시코탄(色丹)을 우선 돌려받는 절충안으로 협상에 나서고 있으나,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에서 어디까지 양보할지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쿠릴 4개 섬에 대한 역사인식, 반환 이후 주권 여부 등에 대한 양국 간 이견 외에도 장기간 영유중인 도서를 반환하는 것에 대한 러시아 내 반대 여론도 걸림돌이다. 지난 20일 야당 등을 포함한 2,000여명이 모스크바에서 쿠릴 4개 섬 반환 반대 집회를 가진 데 이어 회담일인 22일에도 주러 일본대사관 앞에서 반대 집회를 개최하면서 푸틴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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