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신문이나 잡지에 쓴 칼럼이 곧바로 책이 되는 시절이 있었지만, 그런 열기가 사그라든 지는 꽤 오래됐다. 최근에 나온 김영민의 ‘아침에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어크로스, 2018)만이 주목할 예외다. 그는 햇빛 같은 유머를 구사한다. 종이신문의 활발한 인터넷 서비스와 SNS의 저장ㆍ전송ㆍ공유 기능은 신문 칼럼을 책으로 만들거나, 돈을 주고 구입해야 할 필요성을 없앴다. 물론 칼럼 자체의 한계도 있다. 특정한 시간의 부속물인 칼럼은 시간이 갈수록 본래의 문제의식과 신선도를 잃는다. 통상 2~3년 동안 쓴 칼럼을 막상 출판할 때 즈음이 되면 석기시대의 화제가 되어있다.

2018년 12월 29일, 광화문 영풍문고에서 그해의 마지막 책을 샀다. 후지이 다케시의 ‘무명의 말들’(포도밭, 2018). 이 책은 2014년 6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한겨레’에 실렸던 44편의 칼럼을 모은 것이다. 다른 독자와 똑같이 나 역시 깊이 있는 시선과 서늘한 비판 정신이 살아 있는 그의 글에 매혹됐다. 후지이 다케시의 글은 그의 글을 읽는 독자를 하염없이 낙후시키고는 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유학을 왔던 그는 두 나라의 갈등을 메우는 민간 외교가가 될 생각이 없었다. 그는 도리어 한일 양쪽을 모두 불편하게 하는 타자의 역할을 기꺼이 맡았다. 그러면서 자신이 낸 틈을 한국과 일본의 타자들이 만나는 확충의 공간으로 사용했다. 그가 만들어낸 사이 공간에는 퀴어, 장애자, 외국인 노동자, 재일조선인, 반천황주의자, 아나키스트와 같은 사회적 이방인들의 목소리로 붐볐다. 주로 소수자의 목소리를 실어 날랐던 그의 칼럼은 동일성과 다수로 유지되는 민족주의ㆍ국가주의ㆍ대의민주제에 일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 미디어 스타가 되는 대중 노선 가운데 하나는 ‘애완견 되기’다. 이 전략의 요점은 한국인의 인정욕구를 마사지하는 것이다. 외국인이 한국인의 마음속에 있는 오리엔탈리즘을 만족시켜줄 때마다 우리는 환장을 한다. 이와 다른 좌파 노선은 ‘한국 때리기’다. 지금은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 적을 두고 있는 박노자는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한겨레출판, 2007)에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위인으로 인식되는 세종은 실제로 여성의 성적 표현의 자유를 완전히 박탈하는 성리학적 윤리관의 맹신자”였다고 질타했다. 세종이 재위했던 1418~1450년 동안, 여성 인권을 보호하고 확충한 왕이 전무하기로는 유럽도 마찬가지였다.

후지이 다케시의 본업은 역사학이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을 다듬은 ‘파시즘과 제3세계주의 사이에서-족청계의 형성과 몰락을 통해 본 해방 8년사’(역사비평사, 2012)는 이승만 정권 초기, 해방 8년 동안의 정치공간을 분석한 역작으로 평가된다. 이범석과 조선민족청년단(족청)은 파시즘을 신봉하는 민족주의자들이었다. 해방 초기 정국에 미국은 좌파를 분열시키는 한편 포섭하기 위해, 또 이승만은 자신의 허술한 지지지반을 확충하기 위해 족청을 활용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끝나자 미국은 냉전체제에 맞는 좀 더 적극적인 친미반공 주체가 필요했고, 강한 민족주의를 표방하면서 제3세계와 손잡을 가능성이 있는 족청이 불편했다. 족청이 제거되자 조봉암이 운신할 수 있는 정치 공간도 축소되었다.

누구를 위해 대신 분노해주는 ‘의사 영웅’과 같은 글, 다른 사람을 위해 대신 울어주는 곡비(哭婢)같은 글은 좋은 칼럼이 못된다. 나쁜 것은 영웅이나 곡비가 아니다. 글은 기개를 내뿜거나 슬픔에도 젖어야 한다. 정작 나쁜 것은 텔레비전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시청자 대신 웃어주는 웃음상자(laugh track)처럼 독자를 수동성에 빠트리는 칼럼이다. 공인된 ‘먹물’이 대신 분노하고 울어 주었으니, 독자는 이제 더 할 일이 없는 것이다. 이 보다 뒤끝이 불쾌한 글은 없다. 좋은 칼럼은 막히거나 죽어있던 사고의 한 부분을 활성화 시킨다. ‘무명의 말들’이 그랬다. 굳이 흠을 찾자면 그에게는 의사 영웅과 곡비 노릇으로부터 필자를 구해주는 적시타와도 같은 유머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늘에서 미소를 짓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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