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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에너지와 종교전쟁

입력
2019.01.24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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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의 논리와 에너지의 현실은 종종 충돌한다. 보호와 보전이 전제인 환경 논리는 생태적 차원에서 타협을 허용하지 않는다. 반면 개발과 사용이 전제인 에너지는 구성비(mix) 차원에서 공급과 가격경쟁력을 강조한다. 에너지가 우선될 때 환경 정책이 한계를 가지는 것처럼, 환경 관점에서 에너지 정책을 펴는 것도 한계가 있다. 친환경에너지라는 공통분모에도 불구, 환경과 에너지라는 두 주제는 사실 다른 종교에 기반하고 있다.

탈원전 논의는 이러한 두 입장의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 준다. 탈원전과 에너지 전환이 환경적 차원에서 절대선이라면, 원자력과 화석연료는 원죄에 해당한다. 에너지 기본계획에서 한국의 원전 비중은 점진적으로 축소될 전망이고, 탈원전은 당장의 실행계획이 아니라 장기적 결과를 의미한다. 원전의 해외 진출도 아직 주요 정책 과제다. 하지만 탈원전 담론의 파급효과는 막중하다. 실제 에너지 구성비의 변화보다는 탈원전 용어가 갖는 방향성이 지속적인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유행가 가사를 붙이면 “탈원전인 듯, 탈원전 아닌, 탈원전” 담론은 정치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산업 부문 및 대도시 중심의 기저전력 공급에 있어 원자력과 석탄의 필요성은 아직 대체되기 어렵지만, 원자력과 화석연료를 진지하게 논의하는 것은 터부시 되고 있다. 원전비중 축소는 전 세계적으로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중국을 제외하고 원전을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그러나 원전 기술의 경쟁력과 전문인력 확보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원전 기술은 전략자산이고, 원전 사업의 핵심에는 수십 년간 이어지는 기술 지원과 관리가 포함된다.

탈원전 담론의 확대는 급속도로 연구개발 분야를 위축시킨다. 해당 분야에 인생을 걸어 보려는 대학원생 숫자는 급감하고 있다. 원자력과 방사능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뿐 아니라 이것이 평생 밥벌이가 될지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서 인재 유입은 불가능하다. 탈원전 전략과 원전 해외 진출은 한국이 독보적 우위의 기술을 확보하지 않는 이상 양립은 불가능하다. 안에서 미운 털 박힌 자식 취급하면서 밖에서 일등 배우자 구해 오길 바라는 건 난망한 일이다. 정말 원전 사업의 해외 진출을 원한다면 탈원전 담론에 집착하기보다 원전 기술 R&D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원자력 정책을 ‘탈원전’ 담론에서 ‘스마트 원전’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전체 비중은 적어져도 기술적 측면에서 강한 경쟁력을 보유한 스마트 원전 전략이라는 화두를 가져야 대내외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 지난 2년간의 논의가 원전 분야 축소에는 성공했지만 강하게 만드는 데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탈원전이 절대 목표이기 때문에 축소가 안락사로 이어지게 할지, 경쟁력을 가진 에너지 부문으로 남길지에 대해선 보다 솔직한 논의가 필요하다. 만약 후자라면 생존 전략을 명확히 보여 줘야 한다.

에너지 전문 인력 육성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에너지 종교전쟁의 희생양이 얼마 남지 않은 원전 분야 신진 인력이 된다면 아쉬운 일이다. 원전 운용 주기를 고려하면 적어도 한 세대 이상은 핵심 인력들이 충원돼야 한다. 원전 안전 관리와 해체도 충분한 전문 인력과 기술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원자력뿐 아니라 석유, 가스, 석탄 등 주요 화석연료와 신재생에너지 부분에서도 기술경쟁력은 필수다. 에너지 정책은 단순히 비용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존자원이 부족한 한국에서 재생에너지 확대와 화석연료 수급전략, 원자력 기술개발은 공존할 수밖에 없다. 그 공존 전략이 생산적인 경쟁구도와 상호보완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원전 스마트화가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 종교전쟁이 되면 해법은 나오지 않는다. 에너지 정책의 제정분리가 필요하다. 그걸 담아낼 수 있는 새 에너지 정책의 담론이 필요하다.

이재승 고려대 장 모네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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