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창립 1주년 맞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용관 이사장
# “무엇이 잘못돼 내 아들이 이런 사고를 당해야 했는지를 묻고 또 묻는다.”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15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주최한 간담회에서 “잘못을 저지르는 정부나 기업을 절대 용납하면 안 된다. 내가 사는 날까지 싸우고 이겨낼 테니 부당한 나라를 반듯하게 세우기 위해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고 계획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평범한 비정규직은 아들의 산재사고 사망 후 노동운동 투사가 됐다.
# 중학교 국어교사 이용관씨는 2016년 CJ E&M 드라마 조연출이었던 아들의 사망 후 방송 노동 전문가가 됐다. 입사 9개월 만에 열악한 방송 제작 환경을 비판하며 ‘나도 노동자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그네들 앞에선 노동자를 쥐어짜는 (...) 제가 가장 경멸하는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다’는 유서를 쓰고 홀연히 세상을 떠난 아들을 대신해 아버지 이씨는 35개 시민단체와 연대해 ‘신입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방송제작사에 아들 죽음에 대한 공식사과와 방송제작환경 개선을 약속 받았고, 아들의 이름을 딴 노동인권센터를 만들었다.
“(김용균씨는) 명백하게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희생됐는데, 우리 아이는 자기가 힘들어 죽은 게 아니라 다른 노동자를 착취하는 중간 관리자 역할, 그게 자기가 생각한 삶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죽었거든요. (아들의 죽음은) 구조적인 문제니까, 이 싸움이 반도체 공장 노동자 산업재해 문제와 같은 ‘굉장한 싸움’일 거라고 봤어요.”
최근 서울 상암동 DMC산학협력연구센터에서 만난 이용관(63)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이하 한빛센터) 이사장은 “예상했던 것보다도 방송 제작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는 걸, 한빛센터가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걸, 이 일을 하면 할수록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유족과 합동조사를 거부했던 CJ E&M은 사건 발생 8개월만인 2017년 7월 자사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재하고 “이한빛 프로듀서(PD)의 죽음을 무겁고 엄중하게 받아들여 관행적인 제작시스템을 선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이사장이 CJ에서 제시한 유족 위로금과 방송노동환경개선을 위한 사회적 기금 6억원을 출현해 한빛센터를 만든 게 지난해 1월 24일. 사흘 후면 꼭 창립 1주년을 맞는다.
“그 동안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었죠. 한빛센터 활동 중에 미디어신문고를 통해 열악한 방송제작환경을 고발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여러 직능별 노조가 만들어진 거죠. 센터 창립과 비슷한 시기에 방송작가유니온이 만들어졌고요, 작년 7월에는 희망연대노조 산하 방송스태프지부도 꾸려졌고요. 일주일에 한번씩 무료 노무 상담도 하고, 관련 세미나도 하고 있습니다.”
이 이사장의 말처럼 한빛센터는 설립 1년 만에 괄목할만한 성과를 냈다. 청년유니온, 언론노조 등과 함께 ‘드라마제작환경개선을 위한 테스크포스(TF)’를 구성해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했고, 그 결과 전체 방송 스태프 중 감독급을 제외한 조수급 스태프의 노동자성을 인정받았다. CJ E&M의 자회사인 스튜디오 드래곤과 KBS 자회사 몬스터 유니온, SBS 등이 한빛센터와 드라마제작환경 개선과 스태프 인권을 위한 협의를 진행했고 ‘드라마 제작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1주 68시간 근로 시간 제한을 준수하고 이를 위해 제작 시스템을 개선하는 등 6가지 항목에 합의했다. 이 이사장은 “각 방송 노조지부와 한빛센터 업무가 아직은 일부 중첩되기도 한다”며 “한빛센터는 노조 설립과 노조 연대활동을 돕고, 방송 노동환경 연구 같은 개별 노조가 하지 못한 일들을 담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지상파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위한 전수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매주 수요일만 진행하는 무료 노동상담도 평일로 늘리는 게 목표다.
고 이한빛 PD는 학생 시절 비정규직 노동자 연대투쟁에 앞장섰고, 취직 후 첫 월급의 절반을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에 기부할 만큼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한빛이 진보적 엘리트가 되길 바랐다”는 이 이사장은 전교조 소속 해직 교사 출신. 이 PD가 태어난 1989년 해직돼 1994년 복직한 경험 때문에, 한때 아들이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다치지 않고도 사회 기여할 수 있는’ 교수가 되길 바랐던 게 이 이사장의 바람이었다. 이 이사장은 “공부하다 마흔 넘어서도 부모 도움 받는 삶은 싫다”며 취직한 아들을 끝내 설득하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했다.
이 이사장은 “제 원래 계획은 정년퇴임 후에 교육 관련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거였다”며 “지금 이 일(한빛센터 이사장)을 맡는 건 제가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이것 밖에는 없으니까”라고 인터뷰 도중 잠시 울먹였다. 이 이사장은 아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도 제시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빠가 대신해서 아들 죽음의 의미라도 살리는 거잖아요. 방송노동환경 개선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 되는 법인을 만드는 거였어요. 지금 목표는 한빛센터가 자리를 잡아 제가 정치인 후원회장처럼 한발 물러서서 센터 활동을 지켜보는 거예요.”
이 이사장은 아들의 생일과 똑같은 한빛센터 창립 기념일에 자축 파티를 열 계획이다. 그는 “함께 애쓴 분들과 기쁜 마음으로 1년을 기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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