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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사색] 청개구리 국회

입력
2019.01.21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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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개혁, 의원수 확대와 연동형비례제 필요 

 청개구리 거대양당들, 대중핑계로 개혁기피 

 국회정수확대, 비전 가지고 대중을 설득해야 

요즘 밤에 악몽을 꾸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잠을 깨는 일이 잦아졌다. 꿈에서 촛불시위를 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현실이 아니라 꿈이었다. 촛불이 실제 있었던 것이 아니라 꿈을 꾼 것이라는 악몽이다. 이 악몽이 아니더라도, 요즘은 촛불이 정말 실제로 있었던 것인가하는 엉뚱한 생각을 자주하게 된다. 촛불이 실제로 있었다면 세상이 지금과 같을 리가 없지 않은가? 언제 촛불이 있었냐는 듯 다시 기고만장해지고 있는 자유한국당은 그렇다고 치자. 더불어민주당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이들에게 정권을 맡기려고 촛불을 들었던가하는 회의를 갖지 않을 수 없다. 현 정부는 노무현2기가 아니라 박근혜2기라는 한 정치평론가의 지적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하루가 멀다고 터져나오는 스캔들을 보고 있노라면, 벌써 레임덕이 시작됐나하는 걱정에 한숨만 나온다.

정책만 해도 그렇다. 가장 심각한 문제인 경제와 민생은 정부의 정책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해해주자고 치자. 정치개혁의 경우 다른 문제들과 달리 정치권이 개혁의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추진할 수 있는, 가장 쉽다면 쉬운 문제이다. 그러나 전혀 개혁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가 선거법개혁이다. 촛불의 보여주었듯이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정치를 구조적으로 개혁하기 위해서는 국회의 의석수가 득표율과 일치하도록 만드는 독일과 같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지는 것이 선거관리위원회, 전문가, 촛불을 주도했던 시민단체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이 같은 개혁을 위해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단식농성을 하자 이의 도입을 위한 구체안을 적극 검토해 1월 임시국회에서 합의처리하기로 정치권은 합의했다. 그러나 개혁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정치개혁 자문위원회가 우리나라가 인구에 비해 국회의원수가 상대적으로 적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경우 현역지역구 의원수가 줄어들어 이들의 반발로 개혁이 어렵다는 점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되 의원수를 360석으로 늘리자는 개혁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정원을 늘려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나아가 양당의 중진인 정성호 의원과 조경태 의원, 그리고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대표는 오히려 국회의원수를 줄이자고 주장하고 있다. 청개구리가 따로 없다.

사실 국민의 다수는 정치불신에 따라 국회의원 증원에 부정적이고 오히려 줄이자는 의견도 적지 않다. 또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표도 2012년 대선에 출마하며 국회의원수를 줄이자고 주장한 바 있다. 정치학자들, 시민단체들이 이를 비판하자 “대중이 틀렸다는 거냐”고 반발했다. 이 같은 반발을 보는 순간, 개인적으로 대중을 팔아 엉뚱한 길로 국가를 이끌어갔던 히틀러의 잘못된 포퓰리즘이 생각나 모골이 송연했던 기억이 난다. 새로 등장한 국회의원 축소론자들, 나아가 거대양당을 보고 있자니 비슷한 생각이 든다. 물론 민주주의의 핵심은 민심이다. 민주주의의 뿌리에는 천재나 철인왕보다 다수의 평범한 시민들의 결정이 옳다는 전제가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사안에서 대중이 옳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히틀러를 지지했던 독일의 대중들, 투표의 구조적 문제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절대다수의 지지로 유신헌법에 찬성표를 던졌던 국민들의 결정이 옳았던 것은 아니다.

정치란 대중의 뜻을 기계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여론조사를 가지고 정책을 펴나가면 되지, 왜 국회와 정당이 필요하고, 정치가 왜 필요한가? 정치란 대중의 지지에 기반하지만 이를 기계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설득하여 대중의 지지를 조직화하며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거대정당들은 선거법 개혁에 대해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 국민의 뜻이라는 미사여구를 통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는 청개구리 같은 거대양당을 보고 있자니, 당분간 악몽은 계속 꾸어야 할 것 같다. 정말 촛불은 있긴 있었던 것인가?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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