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회담 때와 마찬가지로 성사 가능성이 커진 두 번째 북미 정상회담의 막후에서도 남ㆍ북ㆍ미 정보 라인이 가동된 것으로 전해졌다. 3자 간 핵심 소통 채널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18일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의제와 일정을 논의하기 위해 17일(미국 동부시간) 오후 미 수도 워싱턴DC를 찾은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은 이튿날 북미 비핵화ㆍ평화 협상의 공식 카운터파트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뿐 아니라 지나 해스펠 중앙정보국(CIA) 국장과의 회동 계획을 따로 잡았다. 통일전선부는 대남 정책을 총괄하는 당 부서지만 정보 기관 성격도 강하다.
해스펠 국장은 13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워싱턴을 방문해 만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지난 연말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친서를 받아 온 정부 당국자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사람이 서 원장인데, 그에게 친서를 전달했을 법한 북측 인사가 김 부위원장이다. 전달이 이뤄진 장소는 판문점일 공산이 크다. 한자리에 모이지는 않았지만 남ㆍ북ㆍ미 정보기관 수장들이 최근 최소 한 번씩은 접촉했을 개연성이 있는 셈이다.
정황상 지금 북미 정상회담 관련 논의를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미 정부 기관은 CIA인 듯하다. 1차 북미 정상회담 준비를 지휘했던 양측 고위급 협상 파트너인 김 부위원장과 폼페이오 장관이 처음 대면한 건 폼페이오 장관이 CIA 국장으로 재직하던 지난해 3월이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김영철-폼페이오 라인’이 가동되기 시작했고, 두 달 뒤 폼페이오 장관이 국무장관으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도 라인은 유지됐다.
두 사람 사이에 균열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건 지난해 6ㆍ12 북미 정상회담 직후인 7월 초 폼페이오 장관의 3차 방북 때다.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을 떠나자마자 북은 그의 요구가 강도 짓과 다르지 않다며 맹비난했다. 10월에 폼페이오 장관이 다시 북한에 들어갔다 나왔지만 협상은 진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발표까지 됐던 김 부위원장의 11월 방미가 공개 직후 취소되는 일마저 벌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이번에 미 정부의 대북 소통 창구 역할이 다시 CIA에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까지 북미 ‘스파이 채널’을 이끈 앤드루 김 CIA 코리아미션센터(KMC) 센터장이 떠났지만 후임 센터장과 다른 한국계 요원들이 평양과 판문점을 오가며 막후 협상을 해왔다는 게 외교가에 도는 이야기다. 통전부의 핵심 당국자는 김성혜 통일전선책략실장이다. 1차 북미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의 최측근인 김 실장이 지난해 초까지 대미 접촉을 도맡은 맹경일 통전부 부부장 대신 신임을 얻은 것으로 전해진다. 김 실장의 김 부위원장 방미 수행은 그간 물밑 접촉의 결과인 것으로 해석된다.
북미 정보 라인의 연결 고리는 서 원장이다. 2000년과 2007년, 지난해 세 차례 회담까지 모든 남북 정상회담 성사에 간여해 온 그는 국내 최고 대북 협상가다. 폼페이오 장관의 첫 방북을 주선했던 이도 서 원장이다.
그러나 북핵 협상 의제까지 다루기는 정보 라인의 한계가 명확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한이나 전문성이 지금껏 협상을 주도해 온 외교 라인에 비해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싱가포르 정상회담 당시의 추상적 합의가 재연되지 않게 하려면 비핵화ㆍ상응 조치 관련 의제 실무 협의부터 깐깐히 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는 미 국무부 관료들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버겁게 여기기 때문에 CIA를 활용하는 것 아니겠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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