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올림푸스 창립 100주년…현미경 제조 공장 공개
"첨단기계가 아무리 발달해도 숙련된 기술자의 솜씨를 따라가진 못합니다. 100년 축적한 노하우를 모두 자동화할 때쯤이면 고도기능자의 능력은 더 앞서 있을 겁니다."
기초과학 산업화의 성공 모델로 꼽히는 일본 기업 올림푸스가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아 한국 언론에 이례적으로 현미경 제조 공장을 공개했다. 지난 16일 올림푸스 나가노공장에서 만난 이와타 마사키 과학생산본부장은 렌즈 장인(匠人)의 경험과 현대식 디지털 기술을 융합해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겠다는 올림푸스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일본 도쿄 신주쿠에서 자동차를 타고 북서쪽으로 약 3시간 달리면 올림푸스의 현미경 제조 거점인 나가노공장이 나온다. 이곳에선 지난 100년간 쌓아온 기능자들의 손기술과 경험을 자동 설비와 컴퓨터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시스템 등으로 전환하는 디지털화 작업이 한창이다. 디지털화가 기술인력의 일자리를 위협할 거란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올림푸스에선 반대로 자동화가 진행될수록 손기술의 가치가 더 높아지고 있다.
1920년 세계 최초 출시 이래 올림푸스의 현미경은 과학을 넘어 세계 시장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내시경으로도 변신해 의료는 물론, 항공기 엔진 검사, 반도체 제조, 발전소 유지보수, 석유화학 플랜트 운영 등 산업 전반에 쓰인다. 현미경과 내시경으로 올림푸스는 2017년 4월부터 2018년 3월까지 7,163억엔(약 7조3,5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현미경 성능은 대물렌즈가 좌우한다. 나가노공장은 대물렌즈를 연구, 가공, 제조하는 기술인력 1,000여명을 확보하고 있다. 이 중 고도기능을 인정받은 70여명이 올림푸스의 광학기술을 이끈다. 특히 일왕이 수여하는 황수포장을 받은 5명, 정부가 선정한 현대명공 8명은 전 기술자의 ‘롤 모델’이다. 올림푸스의 기술직은 신입 땐 사내 ‘교과서’로 기술을 익히다 어느 수준에 이르면 고도기능자에게 일대일로 지도를 받는다. “고도기능자들의 이직이 한 번도 없었다”는 다나카 다케히로 나가노올림푸스 사장의 발언에서 100년을 이어온 탄탄한 인재육성 체계에 대한 자부심이 엿보였다.
대물렌즈 제조 공정 중 고도기능자의 손기술과 경험이 가장 위력을 발휘하는 순간은 초점 조정이다. 일반적으로 대물렌즈 안에는 두께와 정밀도가 다양한 렌즈가 7~15개 겹쳐 있다. 현대명공인 이마이 유타카 제조3부 과장은 이들 렌즈를 미세하게 움직여 관찰 대상이 뚜렷하게 보이도록 조정하는 과정을 시연했다. 이마이 과장 같은 고도기능자는 0.0001㎜ 차이까지 수작업으로 조정이 가능하다. 그가 대물렌즈 하나의 초점을 완벽히 조정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2, 3분. 이와타 본부장은 “신입은 하루 종일 작업해도 못 맞춘다”고 말했다.
올림푸스는 고도기능자의 손 움직임과 상황별 판단을 수치화해 초점 조정 과정을 자동화한 설비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장인의 노하우를 모방한 이 시스템은 대물렌즈 하나 조정에 7, 8분이 걸린다. 같은 정밀도를 구현하더라도 이마이 과장의 40년 '감'을 기계가 뛰어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동화 덕분에 일부 고도기능자만 가능했던 조정 작업을 일반 작업자도 할 수 있게 돼 효율이 높아졌다”고 이와타 본부장은 설명했다.
렌즈 표면을 깎는 연마 공정 역시 기술자의 ‘내공’만한 기계가 아직 없다. 황수포장 수상자인 하라 가즈이치씨는 지름이 손가락 마디만한 렌즈 7장을 회전하는 연마판에 올려놓고 1만분의 3mm가 고르게 깎이도록 조절하는 모습을 시연했다. 렌즈 재료로 쓰이는 유리는 400종이 넘는다. 강도와 가공성이 유리마다 다르니 연마 조건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42년 내공으로 이 미세한 조절을 한번에 20건씩 해낸다는 하라씨는 “흥미와 관심이 고도의 기술력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이들 고도기능자 덕분에 올림푸스는 오차가 100만분의 8mm에 불과한 최고급 대물렌즈를 제조할 수 있다. 머리카락 두께보다 1만배 얇은 정도의 오차다.
장인정신의 결정체인 올림푸스의 현미경은 노벨상 배출에 크게 기여해왔다. 2016년과 2012년 각각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오스미 요시노리 도쿄공업대 교수와 야마나카 신야 교토대 교수도 올림푸스 현미경으로 연구했다. 이와타 본부장은 “디지털화로 인재육성 시간을 단축하면서 기계보다 뛰어난 고도기능자를 더 많이 발굴해 지금까지 없던 현미경 기술을 구현하겠다”고 밝혔다.
나가노=글∙사진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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