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의 인정ㆍ부인 따라, 운명 갈린 두 전직 법원행정처장
18일 검찰이 두 전직 법원행정처장 가운데 박병대 전 대법관에 대해서만 구속영장 재청구를 결정한 것은 일제 강제징용 소송 재판개입 등 사법농단의 핵심 사건에 깊숙이 개입했음에도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이 이날 재청구한 박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 청구서는 별지 포함, 총 200쪽에 달한다. 지난해 12월 기각된 구속영장 158쪽보다 분량이 크게 늘었다. “공모관계 성립에 의문이 있다”는 법원의 영장기각 사유를 분석, 정밀한 보강 작업을 진행한 것이다. 당시 행정처 심의관들을 다시 불러 “박 전 대법관이 지시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받았고, 이를 뒷받침할 물증도 압수수색을 통해 상당 부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새로 추가한 혐의는 ‘형사사법절차전자화촉진법 위반’이다. 검찰은 박 전 대법관이 고등학교 후배 사업가인 이모씨의 형사재판 정보를 무단으로 열람했다고 밝혔다. 이밖에 상고법원에 반대하는 서기호 전 의원을 압박하기 위해 법관 재임용 탈락 불복소송에 개입한 혐의도 추가됐다. 서 전 의원 소송의 피고가 법원행정처였던 만큼, 재판개입은 당시 처장이었던 박 전 대법관의 지휘에 따라 이뤄졌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박 전 대법관 측은 모든 혐의에 대해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행정처의 업무 사항을 꼼꼼하게 챙기는 것으로 유명했던 박 전 대법관의 업무 스타일과 당시 실무진들의 진술을 고려할 때 이 같은 주장은 신뢰할 수 없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실제 박 전 대법관은 처장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차기 대법원장’으로까지 불리며 행정처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검찰은 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은 재청구하지 않았다.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해 재판에 넘길 방침이다. 고 전 대법관의 경우 대부분의 사실관계를 인정하는 것은 물론, 문모 전 부산고법 판사 비위와 관련한 재판개입 등에 대해 혐의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고 전 대법관은 처음 구속영장이 청구됐을 당시 영장실질심사에서 “법원행정처장을 지냈지만, 주요 의제에서 배제되어있었다”고 호소한 바 있다. 검찰 관계자는 “박병대 전 대법관과 고영한 전 대법관은 사안의 경중 차이가 있어, 신중히 검토해 결정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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