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얼떨결에 닭집 아저씨로 변신한 영화 '극한직업' 속 고반장(류승룡)의 대사다.
칼을 맞고도 살아나는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좀비 반장. 밤낮이 뒤바뀌고, 몸이 성할 새가 없어 가히 극한직업이라 부를만한 형사이지만 실적이 부족해 만년 반장에 머무르는 인물이다. 의욕은 충만하나 위기의 순간에서 범인을 놓치기 일쑤. 후배들의 승진을 눈물을 머금고 지켜봐야 하는 짠내 나는 인생이다.
해체 위기에 처한 마약반은 사력을 다해 국제 범죄조직 소탕에 뛰어든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부딪히는 이들의 모습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일 고군분투하는 직장인들의 모습도 엿보인다. 급기야 건너편 치킨집을 인수해 위장창업에 나선 마약반은 조직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한다. 잠복이 이어지는데 통닭은 팔아야 하는 것. 할 일이 산더민데 손님은 왜 자꾸 오는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마형사(진선규)는 한번 맛보면 잊을 수 없는 끝내주는 통닭을 만들어낸다. 장사가 너무 잘돼 본업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다. 이젠 범인을 잡는 건지 닭을 잡는 건지 모를 상황까지 처한다.
기발한 상상력과 야식 메뉴 1위인 치킨이라는 친숙한 소재, 고달픈 형사들의 생활이 어우러져 '극한직업'은 관객을 새로운 재미로 인도한다. 범인을 잡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쫀쫀한 박진감은 덤이다. 후반부 집중된 액션 연기는 '베테랑' 못지않은 통쾌함을 선사한다.
그 중심에 류승룡이 있다. '내 아내의 모든 것' 이후 정통코미디는 두 번째 도전이다. 묵직한 카리스마 대신 어딘가 애잔하고 귀여운 형사를 그려내면서 지금껏 본 적 없는 캐릭터로 돌아왔다. 그가 직접 언급한 바 있듯, 심각한 상황에서 등장하는 오열 장면은 관객이 웃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든다. 비현실적 상황이 펼쳐져도 현실에 발 붙인 류승룡의 연기가 극 몰입도를 한층 높여준다.
사실 그의 코믹 매력은 많은 작품에서 발산돼왔다.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이병헌과 주고 받던 차진 연기, '7번방의 선물'의 모자라지만 사랑스러운 아빠, '염력'에서 갑자기 생긴 능력을 주체 못하는 모습까지 적재적소에 웃음의 포인트가 있었다. 활자를 살아 숨쉬게 하는 훌륭한 연기자임에 분명하다.
그런 면에서 이병헌 감독이 고반장 역에 처음부터 류승룡을 낙점한 것도 충분히 납득이 간다. 대본을 볼 때부터 대사가 입에 착착 붙었다던 류승룡은 "몸에 잘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고 털어놨다. 말맛을 살리는 천부적 재능을 지닌 감독과 배우가 만났으니 '극한직업'의 코미디는 생명력이 강하다. 웃음이 사장되지 않고, 계획한 지점마다 기어이 관객들을 웃기고야 만다.
극장가에서 코미디는 성공하기 쉽지 않은 장르로 분석된다. 소소하게 관객몰이를 하는 작품들은 있지만, 액션 대작이나 범죄 드라마에 반해 흥행이 수월하진 않은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극한직업'은 정통 코미디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장르가 복합된 영화다. 제작진의 욕심이 느껴지지만, 다행히 과유불급의 우를 범하진 않았다.
특히 류승룡과 마약반 형사들(이하늬·이동휘·진선규·공명)의 호흡이 예술이다. 각자의 캐릭터를 놀라울 정도로 잘 살려 극강의 케미를 선보인다. 지금껏 본 적 없는 그들의 매력에 관객들이 어떠한 피드백을 내놓을지 기대와 궁금증이 치솟는다.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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