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셧다운 정국, 감정싸움 비화… 출발 전 “군용기 이용 불가” 서한에 순방단 버스 멈춰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일 사상 최장 기록을 깨고 있는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을 ‘핑계’로 내세워 낸시 펠로시(민주) 미 하원의장의 해외 순방 계획에 제동을 걸었다. 펠로시 의장의 군용기 사용 요청에 대해 “80만 미국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이번 대외 일정을 연기하는 게 매우 적절한 조치라는 데 당신도 동의할 것”이라면서 퇴짜를 놓은 것이다. 앞서 민주당이 이달 29일로 예정된 ‘대통령 신년 국정연설’을 연기하거나 서면으로 대체하라고 요구한 데 대한 ‘보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셧다운 정국의 주도권을 쥐려는 두 사람의 다툼이 ‘감정 싸움’으로까지 이어지는 모습이다.
17일(현지시간) 백악관은 홈페이지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펠로시 의장에게 보낸 서한을 공개했다. 서한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셧다운 때문에 펠로시 의장이 추진 중이던 7일간의 벨기에, 이집트, 아프가니스탄으로의 순방 일정이 연기됐음을 알리게 돼 유감”이라고 밝혔다. 관련법상 상ㆍ하원 의원은 공무로 인한 해외 출장 시 군용기 사용을 요청할 수 있는데, 이를 불허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신이 워싱턴에 남아서 나와 셧다운을 끝내기 위한 협상을 하고, 국경안보 운동에 참여하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메시지는 표면적으로는 ‘해외 순방보다 셧다운 사태 해결이 더 시급한 현안 아니냐’는 것이지만, 워싱턴포스트(WP) 등 미 언론들은 이를 ‘보복 조치’라고 평가하고 있다. 전날 펠로시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국정연설 일정과 관련, 비밀경호국과 국토안보부의 경비 차질 우려를 언급하며 ‘셧다운 해소 이후’로 날을 다시 잡거나 29일 서면으로 의회에 전달하는 방안을 고려해 달라고 요청했다. WP는 “펠로시 하원의장이 국정연설 연기를 거론했을 땐 곧장 대응하지 않더니, 이날 해외순방을 막았다”고 지적했다.
서한에 쓰인 어휘에서도 ‘앙갚음’의 의도는 엿보인다. 펠로시 의장은 이번 순방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 아프가니스탄의 미군 파병부대 등을 방문할 예정이었는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외유(excursion)’라고 표현했다. 아울러 그는 “민간 항공기를 타는 건 상관 없다”면서 살짝 비꼬기도 했다.
특히 이날 서한이 펠로시 하원의장의 출발 몇 시간 전에 전해지면서, 순방단을 태운 버스가 의사당을 출발해 군용기가 대기 중이던 미 공군 앤드루스 기지로 향하던 도중 갑자기 멈춰서는 일도 벌어졌다. 순방단 일원인 민주당의 애덤 시프 하원 정보위원장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초등학교) 5학년처럼 행동하는 일은 지난 2년간 너무 자주 있었다”며 “이렇게 유치한 사람이 나라를 운영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반발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오전 국방부 청사에서 진행된 미사일 방어전략 발표 행사에서도 불쑥 국경장벽 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남쪽 국경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도주의 위기, 안보 위기는 또 하나의 중차대한 문제”라면서 “강력한 국경이 없다면 미국이 무방비 상태가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민주당 인사들은 합의를 원하고 있지만,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등 ‘열린 국경파'가 민주당을 장악했다”면서 펠로시 의장을 직접 겨냥하기도 했다.
이슬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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