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방미를 두고 미국 정부가 전례 없는 침묵 모드를 이어가며 극도로 신중한 대응을 보여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부위원장은 17일(현지시간) 오후 6시32분 베이징발(發) 유나이티드항공(UA808) 편으로 덜레스 국제공항에 도착, 워싱턴DC 시내 듀폰서클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김 부위원장의 방미와 관련, "발표할 회담이나 여행(출장)이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해온 미 국무부는 김 부위원장이 워싱턴 DC에 도착한 뒤에도 아직 아무런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이는 지난해 11월 8일 폼페이오 장관과 김 부위원장의 뉴욕 고위급 회담이 잡혔을 당시 미국 정부의 대응과는 온도 차가 느껴지는 것이다.
당시 국무부는 5일 오후 6시가 조금 넘은 시각 김 부위원장과의 고위급 회담 개최를 위한 폼페이오 장관의 뉴욕 출장 일정을 발표했다. 그리고 북한의 요청으로 일정이 어그러진 뒤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각인 7일 0시가 조금 넘어 바로 회담 연기를 다시 발표한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김 부위원장의 방미와 관련해 아직 공식 언급을 내놓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밤에도 국경장벽과 지난 대선 당시 트럼프 캠프 및 러시아 측 간 내통 의혹을 둘러싼 '러시아 스캔들' 특검 수사 등에 대한 '심야 트윗'을 이어갔지만, 김 부위원장의 방미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올리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일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문답하면서 2차 북미 정상회담 장소에 대해 "머지않아 발표될 것"이라고 말한 이후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11일째 '함구'하고 있다.
백악관이 김 부위원장이 도착한 이후인 이날 오후 8시 30분께 공지한 18일 일정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낮 12시 45분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을 만나는 것만 포함돼 있다.
미국 측이 이번에 '함구'로 일관하는 데는 일단 지난해 11월 한차례 회동이 무산된 데 따른 '학습효과'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외교가의 한 인사는 "미국 정부가 지난번 경험의 여파 등으로 어느 때보다 신중을 기하며 유리그릇 다루듯 조심스럽게 대응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미국 측이 자신의 동선이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김 부위원장의 스타일을 배려한 측면이 있다는 얘기도 워싱턴 외교가 안팎에서 흘러나온다.
미국 고위 인사가 다른 곳을 우회하지 않고 미국의 정치·외교적 심장부인 수도 워싱턴DC로 직행하는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어서 그만큼 경호와 보안 등에 더 만전을 기하는 차원이 깔려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실제 김 부위원장은 이날 숙소로 들어가며 정문에 대기하고 있던 취재진을 피해, 건물 옆의 별도 출입구로 들어가는 모습이 일부 외신에 포착될 정도로 동선 노출을 피하며 철통 보안에 각별한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미정부가 김 부위원장의 방미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이왕 신중을 기해온 만큼, 외부 일정이 없는 방문 첫날 '뒤늦은 발표'를 하느니보다는 폼페이오 장관과의 북미 고위급 회담, 트럼프 대통령과의 백악관 면담 등 주요 일정이 잡혀있는 18일 보다 '극적인 효과'를 기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조만간 '트윗 발신'을 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공교롭게 이날 김 부위원장의 워싱턴DC 도착을 몇 시간 앞두고 북한의 미사일 능력을 '특별한(extraordinary) 위협'으로 규정한 '2019 미사일 방어 검토보고서'(MDR) 펴낸 것을 두고도 미묘한 파문이 일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사일 방어 전략 발표 행사에 참석, "미국을 향해 어디서든 어느 때든 발사되는 어떤 미사일도 반드시 탐지해 파괴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전날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북한의 구체적 비핵화 조치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발신한 바 있다. 이를 두고 미국 측이 북미 회담에 앞서 대북 압박성 메시지도 투트랙으로 병행, 기선제압을 잡으려고 하는 차원도 깔린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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