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가면 ‘홍길동 님, 안으로 들어오실게요’, ‘의자에 앉으실게요’와 같은 말을 많이 듣는다. 단체 여행 안내자가 ‘다음 파란불에서 건너 가실게요’, ‘여기서 잠시 기다리실게요’라고도 한다. 이런 말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잘못된 말을 왜 쓰냐고 항의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최근 부쩍 쓰임이 늘어난 ‘들어오실게요’와 같은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기존 문법 틀에서 볼 때 ‘들어오실게요’는 청자의 행동을 요구하는 표현에 화자의 약속을 나타내는 ‘-을게’가 쓰여서 부자연스럽다. 규범적으로 바꾸면 ‘들어오세요’나 ‘들어오십시오’가 옳은 표현이다. 상황에 따라 청유형 ‘들어오시지요’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런 쉽고 익숙한 말이 있음에도 왜 듣기 불편하고 낯선 표현을 자꾸만 쓰는 것일까?
‘들어오실게요’는 ‘들어오세요’라는 명령문을 분명하게 쓰기 조심스러워서 약속의 ‘간접화행’으로 바꾸어 쓰는 말이다. 간접화행이란 명령문을 쓰지 않고도 명령의 효과를 내는 언어 사용인데, 병원에서 ‘귀한’ 환자에게 명령문을 쓰기가 부담스러워 간접화행이 늘어나는 추세다. 실제 행동해야 할 사람은 청자지만 화자가 함께 행동하는 것처럼 표현함으로써 상대방의 협조도를 높이고 공손함까지 표현할 수 있다. 아이에게 밥 먹일 때 ‘아가, 맘마 먹자!’라고 청유문을 쓰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그런데 관광 안내자가 ‘여기서 잠시 기다리실게요’라고 할 때는 화자, 청자 모두가 행동의 주체라서 약속문 사용이 덜 어색하다. 청자를 높이는 ‘-시-’의 쓰임도 자연스럽다. 이런 용법이 발전해서 청자의 행동을 요구하는 ‘의자에 앉으실게요’가 나오게 된 것이다. 생물체처럼 언어도 새로운 말하기 환경에서 끊임없이 진화, 발전하고 있다.
이정복 대구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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