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도시재생 외치더니
뒤론 불도저 보내” 상인들 반발
을지면옥 등 노포 사라지나 우려에
보존하는 방향으로 재설계 요청
박원순 서울시장이 밀어붙이기로 일관하던 ‘박원순식 도시재생’에서 한 발 물러섰다. 서울 도심인 을지로 일대에서 이뤄지는 재개발이 거센 비판에 직면하면서다.
박 시장은 16일 시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재개발로 을지면옥 등 노포(老鋪)들이 사라진다는 우려가 있다’는 질문에 “가능하면 그런 것이 보존되는 방향으로 재설계하는 방안을 요청할 계획이다”고 답했다. 그는 “과거의 문화, 예술, 전통, 역사를 도외시했던 개발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한다”며 “역사적인 부분, 전통적으로 살려야 할 부분은 잘 고려해서 개발계획 안에 반영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6년 ‘세운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된 을지로와 청계천 일대에서는 지난해부터 철거가 진행 중이다. 전면 헐고 다시 짓는 개발보다는 보존과 재생을 강조해온 박 시장의 말과는 정반대 방향으로다. 1930년대부터 자생적으로 생겨나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골목이 즐비한 을지로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에 따르면 세운상가 옆 인현동 일대(세운3-1, 3-4ㆍ5구역)에서는 이미 철거가 진행돼 2곳을 제외한 400여개 사업장이 떠났다. 대부분 기계, 공구, 전기, 금형 관련 사업장으로 이 일대의 제조업 생태계가 망가진 셈이다. 을지로는 개별 제조업자가 모여 생산 라인을 구축한 하나의 큰 공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수십 년 째 자리를 지켜온 을지면옥, 양미옥 같은 노포도 철거를 앞두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그 자리에는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선다.
재개발에 반대하는 상인과 시민들은 “앞으로는 도시재생을 외치더니 뒤로는 불도저를 보냈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을지로가 서울의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거리를 헐고 고층빌딩을 지은 피맛골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한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는 이 일대를 재개발하는 대신 ‘제조산업문화특구’로 지정해 리모델링을 통한 도시재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은선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활동가는 “화장실을 만들고, 지붕 수리도 못하게 해놓고 이제 와서 낙후됐다고 밀어버리겠다는 건 말도 안 된다”며 “청계천, 을지로의 산업적,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재생하는 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박 시장이 재검토를 말한) 지금 이 순간에도 철거가 진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도심 재개발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재개발을 전제로 재개발 구역 지정을 해놓은 상태에서는 똑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개별 건물을 고쳐 쓰거나 개별적인 개발, 재생도 가능하고 동시에 원하는 경우 기존 재개발도 할 수 있도록 서울도심재개발구역 지정을 전면 해제해 여러 선택의 폭을 열어놔야 한다”고 말했다.
배웅규 중앙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기존 도시가 가지고 있던 옛날 골목길, 조그만 필지들, 오랫동안 장사해온 노포들이 사라져 버리고, 기존에 잘 형성돼 있는 도심 산업 생태계를 망치는 재개발은 최적의 방식이 아니다”며 “재개발의 방식도 재생 시대에 걸맞게 바뀌어야한다”고 강조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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