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합의안 부결 하루 만에 ‘불신임 투표’라는 또 하나의 정치적 시험대 위에 서게 됐다. 합의안이 역대 최대 표차로 부결된 만큼 정치적 생명이 사실상 끝났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현실적인 여건상 메이 총리가 총리직에서 물러날 가능성은 낮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15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합의안 부결 직후 이번 표결이 “정부의 완전한 무능에 대한 결정”이라며 메이 총리 정부에 대한 불신임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이에 따라 불신임 투표는 현지시간 16일 오후 7시쯤 하원의원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이날 하원의원 650명 중 과반 이상이 정부 불신임에 찬성하면 집권당인 보수당 또는 다른 정당이 새 내각을 꾸려 14일 안에 하원의 신임을 받아야 한다. 보수당 중심으로 내각이 구성될 가능성이 높지만, 브렉시트를 두 달여 앞둔 만큼 연립정부 등 새로운 형태의 내각이 들어설 가능성도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내다봤다. 어떠한 내각도 신임투표를 통과하지 못하면 의회가 해산되고 조기 총선이 열리게 된다.
하지만 현재로선 불신임안이 통과되긴 어려울 것으로 점쳐진다. 보수당 의원 중 많은 수가 메이 총리와 그의 브렉시트 합의안을 지지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은 현 시점에 조기 총선이 치러져 노동당으로 정권이 넘어가는 상황은 더욱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가디언 등 영국 언론은 보수당 내에서 불신임에 찬성 투표를 던질 사람은 사실상 ‘없다’고 내다봤다. 실제 브렉시트 합의안에 반대표를 던졌던 보수당 내 강경파 유럽리서치그룹(ERG)은 불신임안이 상정되자 메이 총리를 지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여기에 보수당과 사실상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민주연합당(DUP) 소속 인사들 역시 메이 총리를 지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불신임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영국 하원이 보수당 317석, 노동당 256석, DUP 10석, 자유민주당 11석, 무소속 8석으로 구성된 점을 감안하면 보수당과 DUP가 차지하는 327석 만으로 전체 하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 불신임안 저지가 가능하다.
메이 총리는 불과 한달 전에도 불신임 투표에 몰렸지만 살아남은 바 있다. 당시에는 브렉시트 합의안에 불만을 품은 보수당 강경 브렉시트파가 반발해 보수당 하원의원만을 대상으로 당내 불신임 투표가 진행됐다. 투표에 참여한 317명 중 200명이 메이 총리를 지지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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