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착용’ 권고하고 ‘뒷북’… 임산부ㆍ노인ㆍ어린이는 해로울 수도
‘외출시 보건용 마스크(식약처 인증) 착용하기’. 환경부가 제시한 고농도 미세먼지 7가지 대응요령 중 하나다. 실제로 지난 14일 서울과 경기의 초미세먼지(PM2.5)농도가 2015년 관측 이래 최악의 수준을 기록하는 등 연일 고농도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자 15일 출근길에선 남녀노소 마스크를 착용한 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대형마트와 온라인에서는 미세먼지 마스크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문제는 환경부가 이 ‘7가지 대응요령’에서 누가 착용하느냐에 상관 없이 일괄적으로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의사항은 작은 글씨로 ‘마스크 착용 시 호흡이 불편할 경우 사용을 중지하고 전문가 상담 필요’라고 적혀 있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호흡기나 심장질환이 있는 이들과 임산부, 노인, 어린이의 경우 마스크 착용이 건강에 더 해로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환경운동연합 대표로 활동 중인 장재연 아주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정부는 지금까지 마스크 착용 영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모두에게 마스크 착용을 권고했다”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대상별로 마스크 착용에 따른 해로움과 미세먼지에 따른 해로움을 비교 제시해 시민들이 마스크 착용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자체가 마스크를 무상복지의 일환으로 공급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논란이 제기돼 왔다. 예산이 한정되어 있는데 미세먼지를 줄일 수 있는 근본적 해결방법보다 임시방편인 마스크 지급에 투입하는 게 적절하냐는 것이다. 경기도는 지난해 1만2,500대 버스와 어린이집, 아동보호시설, 보건소를 통해 총 655만개의 마스크를 무상으로 지급한 데 이어 14일과 15일에도 버스에서 선착순으로 250만매를 보급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어린이집, 장애인시설 등에 250만개를 보급하는 등 지자체별로 예산을 들여 무상 보급하고 있다. 조경두 인천연구원 기후환경연구센터장은 “미세먼지 농도가 높을 때 마스크를 지급하는 정책도 필요한 건 사실”이라면서도 “농도가 어느 정도로 높을 때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방식으로 지급, 지원할 것인지에 대해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환경부는 뒤늦게 미세먼지 마스크 착용 효과 연구에 나섰다. 환경부는 지난 4일 ‘미세먼지 마스크 건강피해 저감효과 분석 및 향후 추진계획 마련’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이달부터 오는 5월까지 약 900명의 민감계층을 대상으로 마스크 착용 효과를 연구한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마스크 보급순위를 정하고 대외요령을 보완한다는 방침이다. 자유한국당 소속 김학용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역대급 미세먼지로 고통받고 있는 국민으로서는 과학적 근거를 운운하는 환경부의 조치가 혼란스럽다”며 “취약계층의 마스크 착용에 따른 건강영향 자료도 확보하지 않았다는 것은 뒷북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고은경 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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