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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한국영화 위기론

입력
2019.01.15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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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영화에 대한 기사 중 대세는 ‘위기론’이다. 2018년 한국영화 산업을 결산하는 시점에 등장한 화두다. 사실 작년 한국영화 관객 점유율은 50.3%(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였으니, 숫자만 놓고 보면 아주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 한국영화 관객 수가 작년에 비해 줄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1억명대를 유지하고 있으니 회복 불가능할 수준으로 타격을 입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여기저기서 위기 얘기가 나오는 것은, 100억원 이상의 제작비가 투여된 영화들의 연이은 흥행 실패 때문이다. 조짐은 추석 시즌부터 나타났고, 겨울 시장은 심각했다. ‘대마불사’ 신화가 깨진 한 해였던 셈이다.

따지고 보면 위기론이 처음은 아니다. 2008년 한국영화 점유율이 42.1%로 떨어지고 수익률은 마이너스 43.5%를 기록했을 때는 요즘보다 더 심각한 위기론이 돌았다. 하지만 이후 조금씩 회복되어 2011년엔 다시 50%를 넘어섰으며, 2012년엔 58.8%, 2013년엔 59.7%까지 올라갔다. 수익률도 2012년부터 플러스로 전환되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우린 2002년을 잊을 수 없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제작비가 110억원이 넘는다고 알려진 이 영화의 실패는 이제 막 ‘르네상스’의 단맛을 보기 시작한 충무로를 단숨에 얼어붙게 만들었다. 한국영화는 다시 힘든 시절로 돌아갈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002년 한국영화 점유율은 48.3%로, 1년 전에 비해 2%포인트 정도 떨어진 수준이었다. 게다가 다음해인 2003년엔 ‘살인의 추억’ ’장화, 홍련’ ‘올드보이’ ‘실미도’ ’바람난 가족’ ’클래식’ ’지구를 지켜라!’ ’스캔들’ ’황산벌’ 등 다양한 장르에서 흥행작, 화제작, 실험작이 쏟아진다. 1년 전에 흉흉하게 돌았던 위기론을 단번에 날려버릴 만한 위용이었으며, 리부팅 된 상승세는 ‘괴물’이 나왔던 2006년까지 이어진다. 거시적 관점에서 돌아보면 2002년의 위기론은 잠깐의 휘청거림이었을 뿐, 대세에 영향을 줄 만큼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었던 셈이다.

지금의 위기론도 그렇게 절망적 진단만은 아니다. 대작들의 실패도 있었지만, ‘곤지암’ ’완벽한 타인’ ’리틀 포레스트’ ’너의 결혼식’ ’독전’ 등의 알찬 흥행이 그 빈 틈을 채웠다. 좀 더 희망을 말하자면, 장르적 다양성이 눈에 띄게 커졌다는 점이다. 한동안 한국영화가 겪었던 장르 쏠림 현상이 서서히 해소되고 있다는 조짐이다. 그럼에도, 위기는 위기다. 바로 마이너 리그 이야기다. 독립 영화와 저예산 영화의 입지는 계속 축소되고 있다. 편의상 ‘다양성 영화’ 통계만 살펴봐도, 2018년 전국 관객 10만명을 넘은 영화는 다큐 ‘그날, 바다’ 딱 한 편이다. 극영화는 1위인 ‘소공녀’가 5만9,000명이다. 1만명 넘기기도 힘들며, 이런 상황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작년은 극에 달했다.

주류 영화에 위기는 반등과 재정비의 기회일 수 있지만, 작은 규모의 영화들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장기 침체를 겪고 있다. 절망적이다. 만약 한국영화계가 올해 위기를 딛고 재도약하길 꿈꾼다면, 먼저 회복해야 할 건 독립 영화의 영토다. 지난 10여년 동안 시장 논리에 맡겼다면, 이젠 적절하면서도 정당한 개입과 전략과 정책이 필요하다. 게다가 올해는 한국영화 100주년 아니던가. 식민지 시절, 우리 영화는 말 그대로 ‘독립 영화’로 시작했고 그 정신이 있었기에 숱한 억압과 악조건 속에서도 한 세기를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기질을 잇고 있는 후손들이 현재 처한 상황은 100년의 세월이 무색한 초라함이다. ‘위대한 유산’이 이렇게 사그라지게 방관할 것인가? 숱한 기념 행사들 속에서 반드시 생각해 볼 문제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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