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체조계 미투 폭로한 이경희 리듬체조 코치 인터뷰
탈북자 신분으로 한국 리듬체조 국가대표 코치를 지낸 이경희(48)씨는 지난해 3월 체조협회 간부로부터 성적인 괴롭힘을 지속적으로 당했다며 미투 폭로에 나섰다. 2011년부터 당시 체조협회 간부였던 A씨가 3년간 강제추행과 폭언, 폭행을 일삼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당시 이 코치의 폭로는 찻잔 속 태풍에 그쳤다. A씨가 여전히 ‘살아있는 권력’으로 군림했던 터였기에 체조계는 물론 체육계에서도 이 코치 용기에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 A씨는 현재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 코치는 13일 본보와 통화에서 “나야 선수생활을 마친 상태였지만, 현직 국가대표로 뛰는 심석희의 용기는 정말 대단하다”며 울먹였다. 지난해 폭로가 쉽게 묻혀 좌절했던 그로선 큰 용기를 낸 심석희가 대견하고 고마웠다고 한다. 이씨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 체육계의 고질적인 남성우월주위와 폭력성, 그리고 피해자들의 공론화를 원천적으로 막아 온 폐쇄성이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나도 (북한에서)많이 맞고 컸지만, 성폭행은 해도 해도 너무한 일”이라고 했다. 11세 때부터 체조를 시작한 뒤로 기본을 다진 초반 1, 2년을 제외하고는 대회 성적을 높여야 한다며 코치로부터 갖은 폭행을 당해가며 체조를 배웠다고 한다. 이씨는 “선생님(북한 코치)은 실력도 높고 연구도 많이 했던 지도자였지만, 유독 나를 많이 때리면서 가르쳤다”면서 “반항할 수 없는 신분이라 꾹 참았지만, 지금 같았으면 선생님을 당장 고소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건 수십 년 전 북한 이야기인데, 이 시대 대한민국에서 성폭행 폭로가 나왔다는 건 정말 심각한 일”이라고 분개했다.
특히 수사기관의 철저한 조사와 사법부의 엄단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도 A씨와 법적 다툼중인 그는 “경험에 비춰봤을 때 사법부의 엄단이 있어야 2차 가해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했다. 재작년 A씨를 고소했지만, 폭행 건은 공소시효가 끝났고 나머지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 이유로 무죄 판결이 나왔다. 이후 A씨가 이를 면죄부로 여기고 체조계에 복귀해 ‘이씨와 나는 연인이었다’는 얘기를 공공연히 하고 있다는 게 이씨 얘기다.
그는 지난해 미성년자를 포함해 300여 명이 넘는 선수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미국 체조대표팀 주치의 래리 나사르가 최대 360년형을 선고 받은 사건을 보며 “강력한 처벌이 부러우면서도 (한국은 그렇지 않은 게)속상했다”고 했다. 그는 나사르 사건 당시 ‘여자아이들은 영원히 어리지 않다. 그들은 강력한 여성으로 자라서 당신의 세계를 박살내려 돌아온다’는 카일 스티븐스의 법정증언을 일러주며 “체육계뿐 아니라 한국사회 모든 남성 권력자들이 가슴에 새겨둬야 할 것”이라고 했다.
리듬체조 국가대표 후보선수 전임지도자로 일하고 있는 이씨는 “(지도자 활동을)그만 둬야 할 이유가 없다”며 “당당히 현직에서 내 역할을 해낼 것”이라고 했다. 끝으로 그는 “심석희와 당장 직접 만날 일은 없지만, 만일 보게 된다면 그저 말 없이 꼭 안아주고 싶다”고 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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