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을 나온 암탉’의 오성윤ㆍ이춘백 감독 
 신작 ‘언더독’으로 돌아와 
애니메이션 영화 ‘언더독’의 주인공 밤이와 뭉치 인형을 들고 있는 이춘백(왼쪽), 오성윤 감독. 두 사람은 “유기견을 주인공으로 사회적 약자의 삶을 그렸지만, 사랑스러운 캐릭터와 따뜻한 그림체로 관객에게 감동과 재미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NEW 제공

작화 5,050장, 프레임 수 14만5,440개, 스태프 178명, 제작 기간 6년. 애니메이션 영화 ‘언더독’(16일 개봉)은 이 엄청난 숫자들이 더해져 완성된 작품이다. 통계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집념과 공력은 이 숫자들을 곱하기해도 모자랄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없이 소중하다.

2011년 220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마당을 나온 암탉’의 오성윤(56), 이춘백(55) 감독이 신작 ‘언더독’을 내놓았다. 개봉 기준으로는 8년 만이다. 오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이 감독이 캐릭터 작화를 맡아 공동 연출했다.

‘언더독’은 인간에게 버림받은 유기견들이 진정한 자유를 찾아 떠나는 험난한 여정을 그린다. 용감한 개 뭉치(도경수)와 산속에 사는 밤이(박소담) 가족, 철거촌에 사는 짱아(박철민) 일행이 주인공. 사냥꾼의 공격과 사람들의 혐오 어린 시선, 추위와 굶주림, 로드킬의 위험에도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서로 연대하는 유기견들의 모험이 슬프고도 감동적이다.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를 먼저 녹음하고 이를 토대로 작화를 완성해 몰입감이 더 크다.

언더독은 사회적 약자를 뜻한다. 애니메이션 불모지 한국에서 이 영화는 존재만으로 언더독이다. 힘껏 응원하고 싶다. 11일 서울 강남구 카페에서 오 감독과 이 감독을 함께 만났다.

개성과 매력이 넘치는 유기견 캐릭터들.
 
 -제작 기간만 6년이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이춘백 감독(이)= “‘마당을 나온 암탉’은 7년 걸렸는데 그나마 1년 줄었다(웃음). 2016년 여름 개봉이 목표였는데 완성도를 욕심 내다 보니 조금 늦어졌다.”

오성윤 감독(오)= “순수미술을 전공했지만 대중과 소통하고 싶어 이 길을 선택했다. 화가 친구들은 2, 3년마다 개인전을 하는데 나는 시간이 두세 배 더 걸렸다. 좋은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이 없었으면 못 버텼을 거다.”

 -전작의 성공에도 제작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오= “‘마당을 나온 암탉’ 만든 감독이 왜 제작비 투자를 못 받는지 주변에서 의아해했다. 여전히 애니메이션은 성공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하더라. 그래서 중국 투자를 유치했고 계약서에 날인까지 했는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가 터졌다. 중국이 투자를 철회해서 매우 힘들었다. 크라우드 펀딩도 하고, 개인투자자 도움도 받고, 빚도 많이 졌다. 공식 손익분기점은 관객 120만명이지만 사실은 더 높다.”

이= “당시 오 감독이 제작비를 조달하느라 고생했다. 오 감독이 제작자 역할까지 해 준 덕분에 흔들리지 않고 연출에 전념할 수 있었다.”

 -SBS 프로그램 ‘TV 동물농장’에 소개된 유기견의 사연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들었다. 

오= “사회적 약자의 삶에 관심이 많다. 좋은 이야기 소재라고 생각했는데 시나리오를 본 투자사들은 당황스러워했다. 인간과 반려견의 우정 같은 달달한 이야기일 거라 기대했는데 주인공이 유기견들이니까.”

이= “시나리오만 보면 다큐멘터리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장르 특성상 글로 전달되지 않는 게 훨씬 많다. 그림으로 풀어 내면 완전히 다르게 다가온다. 묵직한 주제이지만 밝고 경쾌한 우화로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배우 도경수가 목소리를 연기한 뭉치.
 
 -유기견들이 주체적 자아를 깨닫고 자유와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이= “오 감독은 주인공이 인간으로부터 독립된 생명체로 존재 가치를 찾기를 바랐다. 나는 개의 행복이 꼭 독립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 두 사람이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가 짱아 캐릭터다. 짱아는 인간과의 공존을 택한다. 자연으로 돌아가든 인간 곁에 남든, 스스로 선택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오= “‘사는 대로 생각하지 말고 생각하는 대로 살라’는 대사가 있다. 이번 영화를 설명하는 문장이다.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경계를 뛰어넘는다. 케이지와 농장 울타리, 입산 금지 철망, 비무장지대(DMZ) 철조망까지. 반복해서 등장하는 철망 이미지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게 가로막는 장애물을 상징한다. 뭉치가 처음엔 철망 아래 틈으로 기어서 넘지만 나중엔 힘차게 도약해 철망 위로 넘어간다. 그만큼 성장한 거다.”

 -굶주린 유기견에 온정을 베푸는 이는 이주노동자다. 철거촌 유기견과 산속 유기견이 동행한다. 사회적 약자의 연대로 읽힌다. 

오= “영화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자는 제언을 담고 싶었다.”

 -모험의 종착지가 DMZ라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이= “사람과의 공존이 불가능하다는 걸 확인한 이상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야 했다. DMZ에 여러 번 답사를 갔는데 아무 소리도 없는 적막한 분위기가 초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우리 주인공들이 올 만한 곳이구나 싶었다.”

오= “DMZ에서 이 땅의 정체성은 무얼까 생각했다. 무척 아이러니한 공간이다. 이데올로기의 무풍 지대에 주인공들이 도착한다. 정체성이 모호한 그곳에서 주인공들은 이제부터 진정한 정체성을 찾아가야 한다. 그래서 ‘언더독2’를 구상 중이다.”

배경 작업에 동양화적 기법을 접목해 그림체가 매우 서정적이다.
 
 -작화가 매우 빼어나다. 

이= “자연 풍광은 손으로 그린 2D이고, 캐릭터는 생동감 있는 동작을 구현하기 위해 3D로 작업해 애니메이션화했다. 한번은 일본의 애니메이션협회 관계자들에게 영화 클립을 보여준 적이 있다. 한 관계자가 ‘혹시 모션 캡처를 했냐’고 물었다. 우리가 어리둥절해하니까 다른 관계자가 ‘개를 어떻게 모션 캡처 하겠냐’고 부연하더라. 모션 캡처를 한 것처럼 생생하다는 극찬이었던 거다. 도쿄애니메이션어워드에 출품하라는 제안도 받았다.”

 -일본은 애니메이션 시상식이 있을 정도로 기반이 탄탄하지만 한국은 척박하다. 

이= “우리에겐 장편 창작 애니메이션 시장 자체가 없다. 영유아 애니메이션뿐이다. 그 장르도 중요하지만, 문제는 지나치게 비대하다는 사실이다. 극장용 애니메이션도 영유아 대상으로 나온다. 완구 소비층에 맞춰서 그렇다. 애니메이션이 완구 산업에 종속될까 우려된다.”

오= “‘언더독’도 영유아 영화인 줄 아는 분들이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만 극장에서 보는 거라 여긴다. 제작비 1,000억원이 넘는 그 영화들과 26억이 든 우리 영화를 단순 비교하진 말았으면 한다. 프로선수와 유치원생이 달리기 시합을 하는 셈이다.”

경계를 넘어 자유를 찾아 떠나는 유기견 주인공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언더독’의 주인공들이 두 감독을 닮은 것 같다. 

오= “당연히 나 자신도 영화에 투영돼 있다. 예술가로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내 사상을 표현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이= “사람들은 완성작만 보지만 우리에겐 매미가 되기 전 굼벵이로 살았던 시간도 소중하다. 차기작에선 그 시간이 조금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오= “제작사 오돌또기를 디즈니와 픽사, 스튜디오 지브리에 비유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대작을 만들겠다는 게 아니라 안정적인 시스템이 갖춰진 스튜디오로 성장시키고 싶은 거다. ‘언더독’이 오돌또기엔 진검승부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유명 원작이었고 명필름이란 파트너가 있었지만, ‘언더독’은 오리지널 시나리오에 단독 제작이다. 오돌또기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차기작은. 

오= “이제는 사람이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어야겠다(웃음). 중국 원작 소설을 토대로 ‘너는 내 여동생’이라는 작품을 준비 중이다. 소녀의 성장 드라마이자 가족 영화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연예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