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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재계와 밥만 먹으면 투자가 살아나나

입력
2019.01.11 18:00
수정
2019.01.15 15:57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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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소주성장’ 고수하면서도

재계엔 적극적 투자 활성화 요청 행보

밥 대신 분명한 비전ㆍ투자유인책 줘야

지난 11월 초, 경제 부진에 대한 비판 여론에 밀려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정책실장 등 ‘경제투톱’을 교체하면서도, 청와대는 애써 소득주도성장 정책기조는 유지하겠다는 다짐을 잊지 않았다.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청와대의 소신은 종교재판에서 어쩔 수 없이 천동설을 인정했으나,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독백으로 진리를 고수했다는 갈릴레오의 절절한 일화를 떠올리게 할 정도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같은 입장을 재확인했다. 문 대통령은 주력 제조업 부진과 고용 악화 상황 등을 매우 엄중하게 보고 있다고 전제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공정경제ㆍ혁신성장ㆍ소득주도성장을 3대 축으로 하는 경제정책 전환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강조했다. “경제정책의 변화는 두려운 일이며, 시간이 걸리고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론 다급하게 변화를 모색하는 조짐이 뚜렷하다. 그동안 경제정책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데 최우선 순위를 뒀다면, 이제부터는 경제 활성화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큰일 나겠다는 절박함이 곳곳에서 읽힌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민간 기업들이 새 성장동력을 찾아내고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야 한다. 문 대통령이 홍남기 신임 경제부총리는 물론, 엊그제 취임한 노영민 신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까지 잇달아 “경제계 인사를 자주 만나라”며 기업 투자를 독려하라고 ‘특명’을 내린 이유가 여기 있다.

문 대통령이 초조해 보일 정도로 기업 투자에 신경을 쓰게 된 배경은 다른 데 있지 않다. 그 동안 사실상 소득주도성장에 ‘올인’하다 보니, 미래를 겨냥한 큰 틀의 산업 정책이나 기업 활동 지원책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게다가 규제완화는 지지부진한 가운데 공정경제 차원의 대기업 규제와 재계 적폐청산이 이어지면서 경제 활력의 마중물인 기업 투자가 크게 위축됐다.

사실 상황은 단순한 투자 위축보다 더 나쁘다. 지난 1년간 국내 설비투자는 감소세가 뚜렷해진 반면,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직접투자는 전년보다도 15% 급증한 5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분석됐다. 500억달러면 줄잡아 55조원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SK텔레콤, LG 등 대기업들을 비롯한 수많은 국내 기업이 앞다퉈 해외에서 공장 짓고, 인수합병(M&A)에 나선 결과다. 기업들이 국내 대신 해외에 투자하면 일자리도 해외에서 더 많이 창출될 수밖에 없다. 문화일보 분석에 따르면 삼성전자 등 국내 주요 7개 기업은 지난해 국내에서 일자리를 6,000개 늘렸으나, 해외에선 직접투자 등을 통해 그 두 배에 가까운 1만1,080개의 일자리를 창출해냈다.

물론 글로벌화한 우리 기업들의 해외 직접투자나 M&A는 시장 확보와 신기술 도입 등을 위해 전략적으로 불가피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국내 규제정책과 고임금, 노동 경직성 등에 지레 부담을 느끼고 생산시설의 해외 이전에 나서는 경우도 적지 않다(유턴 거부 기업의 약 20%). 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삼성전자 인도 노이다 신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국내에서도 더 많이 투자하고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는데, 그 말엔 같은 값이면 국내 투자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는 뜻이 담겼던 셈이다.

문 대통령의 ‘재계 소통 강화’ 의지에 맞춰 홍남기 신임 경제부총리는 매주 재계 인사와의 오찬을 갖겠다는 계획을 밝혔고, 대통령 자신도 오는 15일 대기업ㆍ중견기업 대표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간담회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기업을 ‘적’으로 여기면서 그저 얼굴 보고 함께 밥 먹는다고 투자를 일으킬 수 있다고 기대한다면 큰 오산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국가가 자원 배분권을 쥐고 기업 위에 군림하는 시대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

따라서 투자를 일으키려면 재계에 국내 투자가 해외 투자에 비해 전반적인 비교 우위를 확고히 누릴 수 있다는 명확한 투자 유인책을 제시해야 한다. 대통령과 정부는 그런 의지와 복안을 갖고 있는가. 그게 관건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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