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성추행 논란에 휩싸여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포기했던 정봉주 전 국회의원의 명예훼손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이 시작됐다. 정 전 의원은 성추행을 당했다는 피해자 측과 이를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진실 공방을 벌이다 물러선 후 법정까지 오게 됐다. 최근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미투 전문가”를 자처하기도 한 그는 성추행 사실을 부인하며 진실을 가리겠다는 입장이지만 재판의 쟁점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 최병철)는 11일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공표) 및 명예훼손, 무고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정 전 의원의 첫 공판 준비 기일을 진행했다. 정 전 의원의 변호인은 “공소사실을 부인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무죄를 주장했다. 변호인은 “사건의 성추행 피해자로 지목된 A씨를 성추행 한 사실이 있는 지인데 그런 사실이 없어 허위사실이나 무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사건은 지난 해 3월 7일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이 정 전 의원의 성추행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2011년 12월 말 서울 영등포구 소재 한 호텔에서 정 전 의원이 A씨를 뒤에서 끌어안고 입을 맞추려 했다는 것이 기사의 골자였다. 정 전 의원 측은 의혹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고 반박기자회견을 가진 후 프레시안 및 보도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다. 정 전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피해자를 여의도 렉싱턴 호텔에서 만난 사실도, 추행한 사실도 없다. 기사는 나를 낙선시키기 위한 기획된 대국민 사기극, 새빨간 거짓말, 가짜 뉴스”라고 비난했고 프레시안 측은 해당 발언에 대해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정 전 의원을 맞고소 하기에 이른다.
3월 18일 정 전 의원이 서울시장 출마를 강행한 후 양측의 진실 공방은 더욱 격화됐다. 특히 정 전 의원이 호텔에서 만난 사실조차 없다고 부인하면서 논란의 초점은 자연스럽게 사건 당일 정 전 의원과 A씨의 시간대별 동선과 위치 등에 모아졌다. 그러나 정 전 의원이 사건 당일 오후 6시 43분쯤 해당 호텔에서 카드로 결제를 한 내역이 확인되면서 상황은 사실상 정리된다.
정 전 의원은 해당 언론사에 대한 고소 취하 및 서울시장 출마 선언을 철회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같은 해 11월 검찰은 프레시안 측의 보도가 취재원의 구체적 진술 등 객관적 근거를 토대로 한 정당한 보도에 해당한다며 정 전 의원을 불구속 기소하게 된다.
수 개월 전부터 새로운 유튜브 방송을 시작한 정 전 의원은 자신을 “미투 전문가”로 자처하고 있다. 그는 지난 해 12월 인터넷언론 위키트리와의 인터뷰에서 “(정계은퇴 선언 등은)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과 검찰에 예의를 표현한 것”이라면서도 “내가 미투를 언급할수록 나를 미투 가해자로 몰아세운 사람이 불안해 할 것”이라며 재판을 통해 진실이 밝혀질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정에서 그가 바라는 ‘진실’ 규명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실제로 검찰은 실제 성추행 여부와 별개로 정 전 의원의 발언이 해당 언론사 보도에 대한 정당한 반론권 범위를 넘어섰기 때문에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정 전 의원의 재판이 결론을 내려야 하는 것은 성추행 여부가 아니라 정 전 의원의 발언이 법에서 허용하는 표현의 범위를 넘어섰는지 여부라는 것이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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