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보인고 연극부 보인극단이 지난해 11월 서울 송파구청에서 열린 학교폭력 예방 연근 경연대회에서 학교폭력을 주제로 한 연극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학생 A와 B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 서로 험담을 하지 말자고 약속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A는 친구 C에게 B의 험담을 했고, 이 사실을 전해 들은 B의 친구 D는 B와 함께 A가 다니는 학교로 찾아가 ‘왜 (험담 말자고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느냐’며 따졌다. A는 “학생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몰아붙여 너무 무서웠다”며 이를 학교폭력으로 신고했다. 이 사안을 처리했던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는 “A와 D의 학교가 달라 공동학폭위를 열어야 했다”며 “바로 화해하고 끝날 수 있는 가벼운 사안마저 학교폭력으로 신고되는 순간 갈등이 증폭된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지난해 ‘학교폭력 제도개선 방안’에 대한 국민참여 정책숙려제를 진행한 후 예고 기간인 11월을 훌쩍 넘겼는데도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는 위 사례처럼 △2주 미만의 신체∙정신상의 피해 △재산상 피해가 없거나 복구된 경우 △지속적이지 않고 보복 행위가 아닌 경우와 같은 경미한 학교폭력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를 열지 않고 학교장이 종결하도록 하고, 가해 학생 조치 중 비교적 수위가 낮은 1~3호에 대해서는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기재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제도 개선안을 내놓고 논의에 부쳤는데, 참여자간 입장 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13일 교육부 관계자는 “숙려 결과 전문가∙이해관계자 참여단과 학부모ㆍ학생 등이 참여한 설문조사 결과 사이에 큰 간극이 확인 돼 고민 중”이라며 “이번 달 안으로는 최종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30명으로 구성된 전문가∙이해관계자 참여단은 교육부 안에 대체로 찬성하는 쪽이었으나 학부모와 학생, 교원 등 2,2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는 개선안에 반대하는 쪽이 더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개선안은 학교폭력 처리 방안이 경직되다 보니 사과 후 관계 회복과 같은 ‘교육적 해결’을 막고 교육 현장의 혼란을 초래한다는 교육계의 비판에 따라 마련됐다. 박주형 경인교대 교수는 “학교폭력으로 정의된 것 중에 일종의 갈등 수준인 것도 많다”며 “교육적 차원에서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까지도 지나치게 행정절차적 관점에서 처리되고 있다”고 말했다. 학폭위 심의건수는 2015년 1만9,968건에서 2017년 3만1,240건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반면 개선안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학교폭력 처리 과정에서 학교의 자율성이 확대되면 사건의 축소와 은폐가 더 빈번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2017년 국회입법조사처의 보고서 ‘학교폭력 사안처리의 문제점과 개선을 위한 과제’에 따르면 서울 S초의 학폭위가 2016년 학교폭력을 심의한 건수는 0건이지만 같은 해 시행된 학교폭력실태조사에서는 폭행, 감금, 갈취, 집단적 따돌림 등 학교폭력을 경험했다는 응답(복수응답 가능)이 72건에 달했다. 조인식 입법조사관은 보고서에서 “학교가 학교폭력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거나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 안이 학교 현장의 ‘학교폭력 감수성’을 무뎌지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학교폭력 피해자 A(19)군은 “지금도 ‘은따’ 같이 분위기로 괴롭히면 증거가 없다고 처벌 수위가 낮은 경우가 많은데, 교육부 개선안대로 된다면 가해자들이 학교폭력을 더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이라고 말했다. 조정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회장은 “학교가 사건을 축소 또는 은폐할 경우 학교장을 강력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학생부 기재도 처음부터 ‘미기재’가 아닌 ‘보류’로 해서 학교폭력이 재발할 경우에는 가중 처벌하도록 하는 등 제도 개선에는 반드시 안전 장치가 동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저작권 한국일보]그래픽=송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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