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지점이 필요 이상으로 많다는 논란이 KB국민은행 총파업을 계기로 다시 급부상하고 있다. 은행원 3분의 1이 파업 참여를 이유로 자리를 비웠는데도 영업 일선에 큰 혼란이 발생하지 않은 점이 결정적 계기다. 온라인 비대면 거래가 보편화된 현실을 거슬러 은행들이 지점 및 인력을 과다 운용하며 고객 돈을 낭비한다는 비판 한편으로, 은행 지점의 고유 역할이나 공적 기능을 인정해야 한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8일 국민은행 노조의 일일 총파업은 은행 지점의 효용 논란으로 번지는 분위기다. 국민은행 직원 1만7,000여 명 중 은행 추산으론 30%(5,500여명), 노조 추산으론 과반(9,000여명)이 파업에 참여했음에도 전국 1,058곳에 달하는 은행 지점이 전부 문을 열었고 업무상 큰 차질도 없었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파업 여파가 제한적이었던 이유를 두고 은행 측의 거점점포(441곳) 지정 등 사전 대처가 효과를 발휘했다는 해석도 있지만, 이보다는 은행 고객 대부분이 모바일ㆍ인터넷 등 비대면 방식으로 업무를 처리하기 때문이란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입출금, 자금이체 등 기본적 금융거래의 경우엔 은행 창구를 방문해 처리하는 고객의 비중이 8.4%(지난해 3분기 기준)에 불과하다.
영업점 하나 없는 인터넷전문은행의 돌풍도 기존 은행 지점의 과다 논란을 지피고 있다. 인터넷은행들은 ‘지점 유지비와 인건비를 아껴 소비자에게 혜택을 돌려준다’는 차별화 전략을 앞세우며 계좌 개설이나 입출금부터 국내외 송금, 대출까지 다양한 서비스를 비대면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런 탓에 디지털 시대의 금융 변화를 도외시한 은행 노조의 파업이 되레 일자리를 위협하는 역풍이 됐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비대면 금융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노조의 무리한 요구가 이어진다면 은행 측이 지점 정리를 가속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결국 소탐대실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은행들은 경영 효율화를 내세워 꾸준히 지점을 정리 중이다. 지난해 9월 기준 국내 17개 은행의 지점 수는 5,746개로 2015년 말(6,185개)보다 400개 넘게 줄었다. 시중은행이 지난해 1~9월 임차료로 낸 금액(8,048억2,700만원)도 2년 전 같은 기간(8,267억원)에 비해 218억원 줄었다. 인력 감원에도 고삐를 조이면서 2015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은행 임직원 수는 6,000여 명 줄었고, 올해도 은행마다 희망퇴직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은행이 무작정 지점을 줄일 경우 부작용이 적지 않을 거란 반론도 적지 않다. 노인 등 대면 채널이 익숙지 않은 금융 취약계층의 불편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씨티은행이 2017년 오프라인 지점을 기존 126개에서 36개로 줄이는 과정에서 금융당국이 “금융소비자의 불편과 피해 발생이 우려된다”며 견제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금융감독원은 현재 은행권의 과도한 지점 폐쇄를 막기 위한 모범규준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청년 실업이 심각한 만큼 은행권이 지점의 기능을 강화하면서 채용을 적극 확대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이번 파업의 피해가 적었던 것은 업무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월초에 진행됐기 때문이란 반론도 있다.
이대기 한국금융연구원 은행보험연구실장은 “금융의 공공성을 고려하면 수익성과 효율성만 따져 지점을 줄이는 것이 사회적으로 옳다고 보기 어렵다”며 “비대면 거래가 늘더라도 시스템을 움직이는 건 결국 사람인 만큼 무조건적인 인력 감축보단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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