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기법상 근로자로 인정 못 받아
주52시간 시행에도 사각지대
되레 노동강도 세질라 우려
2017년11월11일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출범식에서 이미지 지부장이 발언하고 있다.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제공

17년차 방송작가 A씨는 요즘 밤샘 작업이 잦아졌다. 지난해 주 52시간 근무를 골자로 한 근로기준법(근기법)이 통과되면서, 방송가에도 노동시간 단축 바람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최종 대본을 내놓기 전 법률자문을 받아야 하는데, 방송사 법무팀 직원이 단축된 근무시간 안에 일을 처리해야 한다며 재촉하다 보니 밤샘을 해서라도 대본을 마감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A씨는 “방송사가 정규직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고용은 늘리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들을 우리 같은 비정규직이 고스란히 떠안게 생겼다”고 하소연했다.

노동시간 단축의 대전환기를 맞고 있지만 방송작가들에게 이는‘남의 일’이다. A씨처럼 오히려 노동강도가 높아지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노사 서면 합의만 있으면 노동시간 제한이 없었던 특례업종에 속했던 방송업은 지난해 근기법 개정으로 특례업종에서 제외되면서 노동시간이 주 68시간으로 제한됐고, 올해 7월부터는 방송사(300인 이상) 대부분은 주 52시간 적용을 받는다.

[저작권 한국일보] 최저임금 노동시간 단축제도관련 방송작가 설문 _ 송정근 기자

방송작가들은 올 하반기부터 고강도의 노동에 시달릴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가 지난해 9월 조합원 274명(응답자 24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노동시간이 주 68시간으로 제한된 지난해 7월 이후 업무시간이 줄어들었다고 답한 사람은 1명뿐이었다. 응답자들은 ‘PD(정규직) 간에는 (법정 노동시간에 맞춰) 업무량을 조율하고 (남은) 일은 작가들이 떠안았다’, ‘제도 변화에 대해 방송사가 언급한 적이 없다’고 푸념했다.

방송작가들이 노동시간 단축 등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근본 원인은 대부분 근기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방송사들은 비용부담을 이유로 작가와 근로계약을 체결해 직접 고용하지 않고 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한다. 작가들이 ‘급여’가 아닌 ‘원고료’를 받는 이유도 그래서다. 과로에 시달리는 작가들은 최저임금 인상 혜택도 받지 못한다. 지방에서 15년째 방송작가로 일하는 B씨는 “최저임금이 오른다고 내 원고료가 오르지는 않는다”며 “평균 주 50시간 이상 일해도 한 달에 받는 돈은 150만원 남짓”이라고 말했다. 시급으로 따지면 약 7,500원 수준으로 지난해 최저임금(7,530원)에도 못 미친다. 유급휴일은 단 하루도 보장받지 못한다. 언론노조 설문조사에서도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 이후 원고료 인상이 있었냐는 물음에 절반 이상(58.6%)이 ‘없었다’고 답했다.

방송작가들이 노동권을 보호받기 위해서는 근기법상 근로자로 인정받는 것이 근본 해법이다. 최근 방송작가와 노동조건이 비슷한 연기자와 프리랜서PD가 각각 대법원과 중앙노동위원회에서 근로자로 인정받은 점은 고무적이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김수영 변호사는 “일부 유명 스타작가를 제외한 대부분 작가들은 방송사 기획ㆍ연출가의 업무지시와 관리감독을 받으면서 일한다”며 “근로자로 인정할 근거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미지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장은 “현장에서 작가 처우 개선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경우도 있지만 규모가 큰 방송사들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며 “관계 부처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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