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을 상습 폭행한 혐의로 고소된 송명빈 마커그룹 대표가 지난 6일 피의자 신분으로 두 번째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강서경찰서로 출석해 준비한 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A씨는 담당 파트장과 팀장의 폭언에 심각한 우울과 불안, 수면장애를 겪어야 했다. 걸핏하면 전화해 실적 압박과 함께 욕설을 퍼붓는가 하면 “어차피 갈 데도 없잖아” 같은 인신공격을 수 년째 반복해오고 있는 것. 심지어 주변 동료들에게 "A가 항상 녹음을 하고 다니니 앞에서 말 조심하라"는 헛소문을 퍼뜨리면서, 1년 전부터 아예 신경정신과에서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가 됐다. A씨는 “신고를 할까 고민을 했지만 보복이 너무 무섭고, 설령 하더라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저 속으로 앓고만 있다”고 털어놨다.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와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에 이어 최근 송명빈 마커그룹 대표까지 직장 내 지위를 이용한 ‘오너 갑(甲)질’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뜨거운 가운데, 이들에 대한 처벌 수준이 국민 법 감정에 턱 없이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말이나 폭언 등으로 인한 정신적 가해를 처벌하는 조항이 없는 상황에서, 육체적인 폭행 정도가 있어야 그나마 처벌이 내려지는 게 우리 법 체계. 프랑스 등처럼 갑질을 괴롭힘의 범주로 명시하고 이를 금지하는 법이 도입돼야 한다는 요구가 비등해지고 있다.

실제 갑질 폭행 사건의 과거 사례를 되짚어보면 폭행에 따른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각각 운전기사를 폭행하는 등 횡포를 부렸던 정일선 현대 BNG스틸 사장이나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 등이 벌금 300만원과 1,500만원을 받았고, ‘물컵 갑질’ 논란을 불렀던 조 전 대한항공 전무는 사회적인 파장과는 무관하게 최근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물리적 폭행이 있어야 그나마 벌금형 정도가 내려질 뿐, 그나마도 없다면 폭언 혹은 괴롭힘으로 처벌을 할 수 없다는 게 수사기관이나 법원의 일관된 판단이다.

일부 국가는 일찌감치 직장 내 괴롭힘 문제에 적극 대처하고 있다. 프랑스는 2002년 ‘사회 현대화 법률’에 정신적 괴롭힘을 금지하는 별도 조항을 만들면서 따돌림이나 소외, 무시 등의 행위로 노동자에게 피해가 생기는 것 자체를 금지된 괴롭힘으로 해석하는 등 사안을 엄격하게 보고 있다. 예컨대 프랑스에서는 판매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판매원을 모욕적으로 비방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된 행동이다. 캐나다 일부 주는 노동법에 ‘정신적 괴롭힘 없는 건강하고 안전한 노동환경의 권리’를 명기했고, 영국은 ‘괴롭힘 방지법’이 있다.

한국 역시 지난달 27일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근로기준법ㆍ산업안전보건법ㆍ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처벌 규정이 없다는 한계를 지적 받고 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의 박점규 집행위원은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가 모호하다는 이유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에서 가해자 처벌이 빠졌다”라며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위해선 어떤 것이 형법상 죄가 될 정도의 괴롭힘인지 구체적으로 합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지속적,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직장 내 괴롭힘을 막기 위해선 형법상 조항을 통해 가중 처벌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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