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관에게 “대구 간다”속이고 김포공항으로
위치추적전자장치(전자발찌)를 끊은 뒤 해외로 달아난 50대 성범죄자가 10개월 만에 국내 송환됐다. 전자발찌 부착 대상자가 무단 출국한 첫 사례로, 황당한 거짓말로 감시망을 피해 달아났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청은 지난해 3월 전자발찌를 절단하고 해외로 도피한 A(51)씨를 그 해 10월 태국 파타야에서 검거, 9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내 송환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2002년 특수강도강간으로 징역 12년형을 받은 A씨는 2014년 출소하면서 7년간 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4년 만인 지난해 3월 25일 전자발찌를 절단한 후 서울 고속터미널 휴지통에 버리고 출국했다.
이 과정에서 당국의 허술한 감시망이 드러났다. 사건 당일 A씨 전자발찌에서 이상징후(경보)를 감지한 보호관찰관이 A씨에게 전화를 걸어 경위를 확인하긴 했지만 A씨 말만 곧이곧대로 믿은 것. A씨는 “대리운전을 했던 손님 차에 추적장치를 놓고 내렸고 그 차량이 대구에 있어 장치를 찾기 위해 고속터미널에 왔다”고 둘러댔다. 발찌 본체와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휴대장치로 이중 구성돼, 발찌와 추적장치 거리가 5m 이상 떨어지면 경보가 울리는 전자발찌 구조를 악용한 거짓말이었다. 전화를 끊은 A씨는 대구가 아닌 김포공항으로 향했고 일본 오사카행 비행기를 타고 잠적, 이후 태국에서 소재가 확인됐다.
설상가상 A씨 도주 10일 후(4월 4일)에는 성범죄자 신모(당시 38)씨가 전자발찌를 찬 상태에서 베트남으로 도주했다. 신씨가 공항 주변을 배회하는 것이 확인됐지만 이번에도 “근처에서 택배 하역 일을 한다”는 말에 별 의심을 하지 않았다. 전자발찌 착용자도 당국 허가가 있으면 출국이 가능하기에 공항 보안검색대 직원도 “법무부 허가를 받았다”는 신씨 말에 속았다. 신씨는 베트남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받던 도중 체포됐다.
법무부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우선 발찌와 추적장치를 하나로 통합한 ‘일체형 전자발찌’ 개발을 완료, 지난해 말 1,800대를 보급했다. 또 출국 허가를 받은 전자발찌 부착자 명단을 사전에 보안검색대에 통보해 신씨처럼 전자발찌를 찬 상태로 무단 출국하는 사례를 사전에 막도록 했다.
그러나 A씨처럼 전자발찌를 절단하고 해외로 도주하는 걸 원천봉쇄하기란 쉽지 않다. 법무부 관계자는 “부착자가 해외 도피가 가능한 공항과 항만 주변을 배회하기만 해도, 경찰과 보호관찰관이 곧바로 출동하도록 시스템을 바꿨다”라면서도 “전자발찌 부착자 명단 전체를 제공하는 것은 현행법상 불가능해 현재 관련법 개정안이 발의돼 국회 심의 중”이라고 밝혔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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