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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까지..." SKY캐슬 사교육, 욕하면서도 따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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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까지..." SKY캐슬 사교육, 욕하면서도 따라한다

입력
2019.01.09 04:40
수정
2019.01.09 09:59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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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류층 입시전쟁’ 다룬 드라마 인기의 역설] 

 수십억 ‘입시 코디네이터’에 비판 속 “여건 되면 우리아이도” 욕망 자극 

드라마 'SKY캐슬'은 대한민국 0.1% 상류층이 모여 사는 강남 고급 빌라를 배경으로 자녀 대입에 사활을 건 학부모들을 다루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JTBC제공ㆍ디자인=김경진 기자
드라마 'SKY캐슬'은 대한민국 0.1% 상류층이 모여 사는 강남 고급 빌라를 배경으로 자녀 대입에 사활을 건 학부모들을 다루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JTBC제공ㆍ디자인=김경진 기자

“어머님, 전적으로 믿으셔야 됩니다.”

강남 대치동의 ‘입시 코디네이터’ 앞에서 콧대 높은 대학병원 의사 사모님이 쩔쩔 맨다. 입시 코디네이터의 눈짓 하나 말 한마디에 대한민국 상위 0.1% 명문가 사람들이 입도 제대로 열지 못한다. 종합편성채널(종편) JTBC 금토드라마 ‘SKY캐슬’ 속 입시 코디네이터는 절대 권력과도 같은 한국 사교육의 현재를 상징한다.

‘SKY캐슬’은 사교육 현장을 극단적으로 묘사하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입시전쟁에 시달렸거나 시달리고 있는 학부모 시청자를 중심으로 공감과 분노 등 다채로운 감정을 일으키며 시청률을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1.7%(닐슨코리아 집계)의 시청률로 시작한 드라마는 지난 5일 방송에서 15.8%에 이르며 JTBC 드라마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종편 같은 케이블채널 드라마가 시청률 10%를 넘기기는 이례적이다.

한국 교육의 서글픈 현실을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드라마지만 시청자들의 감정은 양가적이다. 장래희망과는 무관하게 자녀를 서울대 의대에 입학시키려는 부모들의 전쟁 같은 뒷바라지가 비판을 부르면서도, 여건이 된다면 따라 하고 싶다는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한다. ‘상류층 그들만의 리그’에 끼고 싶은 욕망이 시청률 견인에 한 몫하고 있는 것. 욕하면서도 동경하고 감정 이입하는 역설적인 사회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사람을 키우는 교육을 해야 한다면서도 정작 자신의 자녀는 사교육을 시켜야만 안심하는, 학부모들의 이중 잣대를 보여준다.

 

 ◇‘금수저’ 세계에 상대적 박탈감 들지만… 

“다시는 그 시절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TV를 껐습니다.” 30대 직장인 이정현씨는 드라마 ‘SKY캐슬’을 보고 깜짝 놀랐다. 15년 전 대치동에 살면서 엄마 손에 이끌려 학원을 전전하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오전 6시부터 밤 12시까지 입시 학원에서 짜준 플랜에 따라 2년 가까이 생활했다. 이씨의 어머니는 학원에 속한 컨설턴트의 말을 무속신앙인 듯 믿고 따랐다. 일명 ‘SKY’대 입학을 목표로 했던 그는, 결국 꿈을 이뤘다. 그러나 이씨는 “내 꿈이 아니라 부모님의 꿈”이라고 했다.

‘SKY캐슬’의 상류층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다. 딸을 서울대 의대에 입학시키려고 입시 코디네이터에 수십억 원의 비용을 들이는 한서진(염정아)과 부유한 ‘SKY캐슬’ 자녀들이 모여 독서토론회를 벌이는 모습은,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뒷맛이 씁쓸하다. 고2 딸을 둔 박지연씨는 “엄마들끼리 흔히 수시전형(수시)을 ‘금수저’를 위한 제도라고 말하는데, 그런 문제점들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장면에선 분노가 치밀더라”고 했다. 중1 아들을 둔 강주민씨는 “중학교 3년간 봉사활동 60시간을 채우려면 방학을 이용할 수밖에 없고, 그나마도 중1때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며 “그러나 ‘금수저’ 자녀들은 다양한 외부활동으로 ‘학종’(학생부종합전형)에 유리하니, (드라마를 보면서) 아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같은 맥락에서 사람들은 ‘SKY캐슬’ 상류층에 돌을 쉽게 던지진 못한다. 많은 학부모들이 사교육에 비판적인 이수임(이태란)보다 자녀 대입에 목숨 거는 한서진의 행동에 더 공감한다. 중학생과 초등학생 아들 둘을 둔 주부 손지영씨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면서도 “중1인 아들을 위해 입시 포트폴리오 상담에 150만원을 줬다는 한 학부모의 얘기엔 솔깃하더라”고 털어놓았다. 주부 윤은주씨도 “입시 코디네이터가 명상실에서 학생의 심리상태를 관리하는 걸 보고 문화충격을 받았지만, 우리 아이도 기회가 있다면 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라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SKY캐슬’의 시청률 수직 상승은 드라마 외적인 힘이 강하게 작용한 것”이라며 “사회적 담론이 나올 수 있는 건 사교육 문제를 중심으로 한 계급ㆍ서열주의나 학연 등 사회적으로 가장 민감한 부분을 고발하고 풍자한 콘텐츠의 힘이 크다”고 설명했다.

 ◇중상류층의 계급 재생산 문제 드러내 

“3대째 의사 집안을 만들 거야.” ‘SKY캐슬’의 주인공 한서진은 딸을 서울대 의대에 보내 의사 집안의 명예를 이어가려고 한다. 표면상으론 입시전쟁을 다룬 사교육 문제를 꼬집는 듯 보이지만, 중상류층의 ‘계급 재생산 욕망’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시청자들의 이중적인 면과 조응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드라마엔 2000년대 초 ‘기러기 아빠’나 ‘돼지 엄마’ ‘헬리콥터 맘’ 등으로 불린 우리사회 중상류층의 모습이 투영돼 있다. 자녀 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아내와 아이들을 외국으로 유학 보내고 홀로 일하며 학비나 생활비를 보내는 ‘기러기 아빠’들이 이때부터 자리 잡았다. 입시 정보나 공부법 등에 대한 정보력이 빠른 일명 ‘돼지 엄마’들은 대치동에 사교육 열풍을 일으켰다. 그렇게 공부시킨 자녀들이 대학에 들어가거나 사회생활을 하더라도 헬리콥터처럼 주변을 맴돌면서 참견하는 ‘헬리콥터 맘’도 사회적 문제로 부각됐다. 중3 아들을 둔 윤영미씨는 “기러기 아빠, 돼지 엄마 등이 드라마 주인공들과 큰 차이가 있을까란 생각이 든다”며 “흙수저 입맛에 맞춘 비판에 통쾌하다가도 자괴감이 들고 때로 학부모 주인공들에 감정 이입을 한다”고 말했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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