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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No’ 하는 비서실장

입력
2019.01.08 18:00
수정
2019.01.08 18:0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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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5년 임기 동안 발탁되는 청와대 비서실장은 4~6명 정도다. 그중 첫 번째 비서실장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문민정부 이후 초대 비서실장으로 대부분 정치인 출신을 앉힌 것은 집권 초 정권 안정에 관록 있는 정치인이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천신만고 끝에 당선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영남 출신에 노태우 정부 때 정무수석을 지낸 김중권을 초대 비서실장에 임명한 것은 취약한 정치적 기반을 넓히려는 승부수였다.

□ 두 번째 비서실장의 역할은 다르다. 임기 초반의 정치적 안정을 거쳐 국정에서 본격적인 성과를 내야 할 시점이다. 정치인보다는 실무형, 행정가형 인사들이 주로 중용된 이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두 번째 비서실장으로 김우식 연세대 총장을 임명한 것은 과학기술 정책을 중심으로 나라를 제대로 발전시켜 보겠다는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정정길 울산대 총장을 기용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정치적 색깔이 옅은 까닭에 이들은 전임자보다 오래 근무하며 나름대로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 문재인 대통령이 두 번째 비서실장으로 ‘원조 친문’인 노영민 주중대사를 임명한 것은 앞선 정부들 사례와 비교된다. 정책적 실무 중시보다는 ‘친정체제’ 강화로 국정 장악력을 높이겠다는 포석의 성격이 짙어 보인다. ‘신(新) 친문’인 ‘임종석 비서실’보다 친문 색채가 강화되리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전 정부를 보면 자신의 의중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인사를 곁에 두는 것은 정권 말기인 경우가 많았다. 김대중의 마지막 비서실장은 박지원, 노무현은 문재인, 이명박은 방송인 출신의 하금열 등 인간적 신뢰가 깊은 측근이 대상이었다.

□ 지근거리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실장의 가장 큰 임무는 쓴소리다. 노무현 정부 첫 비서실장인 문희상 국회의장은 어느 날 대통령이 불러 갔더니 자신의 생각과 정반대되는 얘기를 하길래 논쟁을 각오하고 “그건 절대 안 됩니다”고 하자 “그래요. 안 된다는 소리 들으려고 불렀습니다”며 순순히 물러서더라고 회고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퇴임 직전 역대 비서실장들과의 조찬에서 “비서실장의 임무는 내가 듣기 싫지만 들어야만 하는 얘기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임 노 실장이 ‘아니요(No)’라는 말을 얼마나 하느냐가 문재인 정부의 성패에 큰 영향을 미치리라는 건 분명하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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