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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진의 입기 읽기] 옷에 깃든 노동자의 땀을 기억하길

입력
2019.01.09 04:4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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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염색공장의 풍경. 예쁜 옷엔 공장 노동자들의 보이지 않는 피와 땀이 서려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모로코 염색공장의 풍경. 예쁜 옷엔 공장 노동자들의 보이지 않는 피와 땀이 서려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지금 입고 있는 옷, 누가 어디서 만들었을까. ‘어디서’는 옷 안에 있는 라벨을 먼저 본다. 의류 제조의 가장 중요한 단계인 원단의 제조와 봉제가 어디에서 이뤄졌는지를 알 수 있다. 여러 나라에 걸쳐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나눠 적기도 한다. 사실 라벨만으로 확인이 어려울 수 있다. 라벨에 적혀있는 나라에서만 만든 것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의류 생산하는 업체는 전 세계 곳곳에 퍼져 있다. 코튼을 재배하는 곳, 원단을 만드는 곳, 염색을 하는 곳, 부자재를 만드는 곳, 봉제를 하는 곳 등 옷 한 벌엔 수많은 제조사의 손길이 녹아 있다.

‘누가’의 문제로 들어가면 훨씬 복잡하다.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개발도상국의 명칭이 적힌 걸 보고 옷을 만든 공장의 근로환경에 관해 의구심을 가질 수 있겠다. 사실 미국, 프랑스, 이태리 등 의류 제조업으로 유명한 선진국이 적혀 있다고 해도 비슷한 위험은 있을 수 있다. 그 안의 숨은 사정은 제 각각이다.

2013년 방글라데시에서 1,000여명이 사망한 공장 붕괴 사건 이후 생산 외주화에서 오는 위험성이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이후 국가적 차원에서 규제와 감시 규정이 만들어졌고, 이와 관련된 비정부기구(NGO)나 언론기관의 활동도 활발하게 이뤄졌다. 여러 기관에서 현 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정기적으로 발행해 경각심을 주기도 한다. 이 칼럼을 통해서도 의류 제조업의 노동 문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몇 번 한 적이 있다.

개선을 위한 움직임이 있긴 하지만, 작년 말 공급 체인에 대한 조사회사 KTC(Know the Chain)가 내놓은 ‘2018년 의류, 신발 공장의 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보면 현실은 여전히 낙관적으로 보기 어렵다. ‘현대판 노예’라고 하는, 강제 노동을 하고 있는 근로자들은 세계에 약 2,490만명 정도 되는데 그 중 가장 많은 이들이 의류와 신발 공장에 종사하고 있다.

요즘은 글로벌 패션 기업에서 공급 체인의 비윤리적 노동 환경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중간 에이전시를 배제하고 직접 고용을 한다. 또는 100여개로 흩어져 있는 공장 근로자의 신원 서류를 직접 보관하고, 본사에 바로 연락할 수 있는 핫라인을 설치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곳이 기본적인 정책이나 규정 자체가 없다.

흥미로운 점은 아디다스나 룰루레몬 등 대중적인 중저가 브랜드들이 정책 측면에서 고급 브랜드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그동안 여러 NGO 등 국제기구나 국제적 규제 등으로 대형 브랜드에 대한 감시가 높아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고가의 패션 브랜드들의 점수가 상당히 낮은데, 외주 생산이 드물어 내부에 관련 규정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 프라토 지역의 섬유 공장이나 투스카니 지역에서 저렴한 임금을 받고 디자이너 가방을 만드는 중국 이민자들 뉴스를 접하면 이들 브랜드도 관련 규정이 필요해 보인다.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감시와 규제가 늘어나면 공장은 체계가 잡히지 않은 다른 나라로 옮겨갈 수 있다. 개발도상국 중에는 경제적인 이유로 근로환경에 관한 문제를 방치해 놓는 경우가 많다. 의류 생산은 여전히 대표적인 노동 집약 산업이고 노동자와 기계만 있다면 어디에서든 시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국가간 규제의 확대뿐 아니라 이런 공급 체인을 운영하는 브랜드 본사에 더 많은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

무엇보다 소비자들의 관심이 절실하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옷을 구매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한다. 최근 몇몇 기업은 홈페이지를 통해 공장의 모습을 공개하고 현 근무 상황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물론 옷의 출처를 일일이 찾는 것은 번거롭고 저렴한 제품을 구매하고 싶어서 이를 외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인권과 윤리의 문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2019년은 괄목할 만한 진전이 있길 기대한다.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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