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거실에 모여 9시 뉴스, 혹은 테이블 위에 놓인 신문을 챙겨보는 모습은 이젠 일일 드라마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예스러운 이미지가 됐다. 2019년 현실에서 작은 아들은 학원에서 돌아오지 못했고, 큰 딸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시간이니 가족이 거실에서 동일한 스크린을 보며 이슈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혹자는 이를 ‘거실 미디어(Living room Media)’ 시대의 종언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침실 미디어(Bedroom Media)’ 시대의 시작이라 부른다. 생활 패턴이 다른 가족이 각자 침실로 들어가 취향에 일치하는 미디어를 즐기는 ‘침실 미디어 라이프 스타일’의 득세 때문에 나 홀로 TV를 지키는 아빠, 이들을 고객으로 모시는 전통 미디어들의 고민은 산더미를 이룬다.
침실 미디어의 위력은 이제 가족, 미디어기업에 영향을 미치는데 그치지 않고 있다. 최근 국내 정치권 인사들 사이 막강한 프로파간다 도구로 부상한 유튜브의 인기를 들여다보면 더욱 그래 보인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유튜브 채널 ‘TV홍카콜라’가 20여일 만에 구독자 22만여명을 끌어모으고,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알릴레오’는 첫 방송 후 나흘 동안 구독자 50만여명을 넘어섰을 정도다. 정당이나 정부에서 정책 홍보를 위해 유튜브 채널을 활용하는 사례는 부지기수지만, 정치권 주변부 인사들이 뉴스로 불릴만한 콘텐츠를 만들어 전달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유튜브라는 이름의 침실 미디어가 새로운 정치지형 형성을 이끌어갈 날도 멀지 않았다.
유튜브 등이 젊은층이 주로 몰리는 엔터테인먼트에 머물지 않고 정치, 안보 뉴스 분야에서마저 소구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크게 세가지다. 이들 미디어에 실린 뉴스는 정확히 소비자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 유튜브, 아프리카TV 등 여러 침실 미디어의 가장 큰 특징은 ‘볼수록 더 보고 싶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유튜브는 정규재TV를 구독한 사람에게 TV홍카콜라를 다음 볼거리로 제시하고, 만일 곧바로 TV홍카콜라를 본다면 또 다른 우파성향 뉴스영상물로 옆구리를 찌른다. 끊임없이 보고 싶은 뉴스를 주로 보여주는 메커니즘이다. 뉴스 선택방식이 특별히 진취적이지 않다면, 이런 재미의 굴레를 벗어나긴 힘들다. 둘째로 이들 미디어가 설명하는 뉴스는 참 쉽다. 신문과 TV방송에서 여러 꼭지 뉴스를 한정된 시공간에 제공하느라 생략한 용어 설명이 빠짐없고, 같은 말을 반복까지 한다. ‘입말’ 콘텐츠에 껄끄럽던 권위적 덧붙임도 덜하다. 또한 이들 뉴스는 동일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SNS로 공유가 간단하다. 신문지를 잘라줄 필요도 물론 없다. 미디어 소비 창구의 무게중심이 침실 미디어로 옮아가는 게 좋기만 한 일일까.
“감정 혹은 개인의 신념이 객관적 사실에 앞서 여론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 2016년 옥스퍼드 사전의 올해의 단어로 꼽히며 잘 알려진 ‘포스트-트루스(Post-truthㆍ탈 진실)’의 정의이다. 말 그대로 진실 검증을 중시하기 보다 익숙한 정보원을 무작정 신뢰하는 세태를 뜻한다. 각자 방문을 닫아두고 공급받는 이들 미디어의 뉴스는 자칫 포스트- 트루스의 올가미에 대중을 묶어둔다. 타인의 스크린을 곁눈질하지 않는 한 자신이 보는 뉴스가 진실이라 맹신하기 쉬운 탓이다.
방송사 일상을 그린 미 HBO 드라마 ‘뉴스룸’에 나오는 장면. 2013년 4월 15일 보스턴 마라톤 테러 발발 증언이 SNS에 쏟아지지만, 앵커는 보도를 보류한다. 경쟁사가 속보를 터트려도 기다린다. 마침내 테러 보도를 시작하는 시점은 수십 분이 지나 당국자의 확인 발언을 들은 뒤였다. 포스트-트루스의 올가미를 해쳐갈 느리지만 정확한 시스템이 침실 미디어에도 절실한 시기이다.
양홍주 기획취재부장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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