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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의 다시 광릉 숲에서] 나무처럼 나이들기 1

입력
2019.01.09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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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도동의 향나무(사진 국립수목원)
울릉도 도동의 향나무(사진 국립수목원)

새해가 되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스스로 몇 살이 되었는지를 헤아리지 않고 있는 저 자신을 보게 되네요. 흘러가는 시간을 잡을 수 없으니 나이가 들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고 잘 나이 들어가는 일이 정말 중요해지는 시기가 제게도 다가왔다는 사실을 절감합니다.

나무들은 나이를 몸에 새기며 살아갑니다. 한해를 자라면서 겨울에는 아무래도 생장이 더디고 조직이 치밀해지며 색깔이 진해지지만 생장하기에 좋은 여름에는 빨리 자라고 조직도 성기도 색깔도 연해지게 됩니다. 진한 부분과 연한 부분이 지나면 1년이 지나게 된 것이므로 자연스럽게 그 수를 헤아려 나무의 나이를 알 수 있게 되며 우리는 이것을 나이테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나이테로 알 수 있는 것이 나무의 나이만은 아닙니다. 기후환경, 산불 여부, 남북방향 등등 그 나무가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 가지 내부 변화를 가시적으로 볼 수 있는 지표가 됩니다. 이러한 나이테만을 연구 분석하여 지난날의 환경을 추정하는 연륜분석 연구를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사람들도 속내를 겪어 보면 보기와 달리 사람의 성격, 살아온 환경 등을 엿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것이겠지요.

나무의 나이는 이러한 나이테를 헤아리는 방법이 일반적인데 보통은 생장추라는 기구를 통해 가늘고 긴 목편을 빼내어 봅니다. 하지만 오래된 나무들의 경우에는 속이 비어 있는 경우도 많아 나무 전체의 크기와 생장으로 추정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천연기념물처럼 보호를 받으며 어렵게 살고 있는 나무들은 구멍을 뚫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어서 언제 누가 심었다는 전설에 의거하여 나이들이 정해지기도 합니다. 방사성동위원소의 반감기로 연대를 측정하는 방법도 있기는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산 나무는 기록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고, 비교적 최근에 9,500살이 넘는 독일가문비가 발견되었다고도 하지만 대부분 기록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화이트 산에 살고 있는 브리슬콘 파인(Bristlecone pine)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에는 올드하라(Old Hara), 성서에서 969세까지 살은 노아의 할아버지 이름을 딴 므두셀라 등의 별명을 가진 5,000살 정도의 브리슬콘 파인들이 자라고 있다고 합니다. 다른 식물들은 거의 살 수 없는 고산의 매우 척박한 돌로마이트라고 하는 석회암과 유사한 퇴적암 토양에서, 생존에 필수적이지 않은 시스템은 모두 버리고 아주 제한된 양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적응하여 천천히 그러나 아주 오래 오래 살고 있는 것이지요. 100년에 3㎝정도 굵어질 만큼 더디 자란다고 합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나무의 경우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라의 마지막 세자 마의태자가 심었다는 전설을 가진 용문사 은행나무나 정선의 주목도 있지만 많은 이들은 울릉도 도동 바닷가 절벽에서 자라고 있는 향나무가 2,000살은 훨씬 넘은 가장 오래 산 나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발 디딜 곳조차 없는 절벽, 바위틈에서 온갖 비바람을 한 몸에 받으며 긴긴 세월을 살아온 이 향나무의 모습을 보면 절로 숙연한 마음이 들 정도입니다.

언뜻 생각해보면, 좋은 환경에서 쑥쑥 커나가며 굵게 크는 나무들이 튼튼하고 오래오래 잘 살아갈 것 같지만, 결국 끝까지 살아남은 나무들은 어려운 환경에 순응하고 때론 극복해 나간 나무들입니다.

아직도 경쟁의 구조 속에서 앞으로만 향해 달려야만 할 것 같은 인생의 속도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 그 긴긴 세월 풍상을 겪으며 살아온 나무들은, 불필요한 겉치레는 벗어 버리고, 의미 없는 삶의 짐들은 내려놓으며, 천천히 천천히 단단하게 살아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의연하게 나이 들고 싶습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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