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개최 장소 발표” 메시지 구체화
양측 물밑 접촉 순조롭게 진행 가능성
북미 고위급회담을 향한 북한의 무응답이 길어지고 있음에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연일 2차 북미 정상회담을 향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6일(현지시간)에는 북측과 2차 정상회담 개최 장소를 협상 중이라고 소개했다. 미국 내부적으로 북측과 타협 가능한 수준의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구축 로드맵을 이미 도출했거나, 적어도 양측의 물밑 의견교환이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준비 상황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소폭이나마 점차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지난달 중순까지만 해도 “우리는 서두를 게 없다”(12월 14일 트윗)던 그의 메시지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 약 1주일 전인 12월 24일엔 “진전은 이뤄지고 있다. 김 위원장과의 다음 회담을 고대한다”로 전환됐다. 이후 김 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대화 시그널을 보내자 2일 트럼프 대통령은“우린 너무 멀지 않은 미래에 또 하나의 회담을 준비할 것”이라고 다시 낙관론에 불을 지폈다. 이어 6일 백악관에서 캠프데이비드로 출발하기 전에는 조만간 회담 개최 장소가 발표될 것이라는 디테일까지 더했다. ‘정상회담 띄우기’ 메시지가 점차 구체화되는 양상이다.
특히 개최지를 선정한다는 것은 두 정상이 회담 개최에 공감을 이루고 곧이어 시기도 논의할 것임을 의미한다. 외교가에서는 벌써부터 김 위원장의 이동이 원활한 아시아 국가들 위주로 장소 후보가 거론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차기 정상회담 장소의 조건으로 “항공기 비행거리 내”라고 언급한 적 있다.김 위원장의 전용기 참매 1호는 노후화로 인해 제원상 비행거리(약 9,200㎞)보다 멀리 가기는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아시아 국가 개최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아시아 중에서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몽골 등이 정상회담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베트남 정부의 고위 당국자들은 이미 지난해 말 우리 정부에 2차 북미정상회담을 자국에서 개최하는 데 관심이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미 CNN방송은 전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측이 베트남의 경제 발전상에 관심을 두고 있고 미국으로서도 북한의 개방을 이끌어내기 용이하다는 상징성 때문에 베트남이 가장 유력하게 떠오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도네시아는 북한과 외교관계를 맺은 중립국이라는 점, 몽골은 북한과의 지리적 근접성 등을 이유로 후보지 물망에 꾸준히 오르고 있다.
회담 준비에 진척이 있다는 건 미국 정부가 북측을 설득할 만한 수준의 비핵화 및 평화구축 로드맵을 고안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그간 북미는 김 위원장이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약속한 풍계리 핵실험장 및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 폐기검증, 조건부 영변 핵시설 폐기와 각각의 상응조치를 매칭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다. 북측은 풍계리ㆍ동창리 검증에 이어 영변 핵시설을 여러 패키지로 쪼개 ‘부분 폐기-검증’을 반복, 이 과정에서 대북제재를 단계적으로 해제하는 방안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미국은 제재 완화 시점은 최대한 늦추고 선(先) 핵 신고와 사찰 입장을 유지해 왔다. 이에 따라 신고 절차를 건너 띄고 남북이 공감한 ‘선 폐기-후 폐기 검증’ 방안을 미국이 일부 수용해 로드맵을 도출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미측 로드맵은 취임 5개월 차에 접어든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주도해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복수의 외교 소식통을 종합하면 비건 대표는 우리 측의 중재안을 상당 부분 반영해 로드맵을 가다듬었으며, 백악관과 국무부 내 강경파를 설득하는 작업도 거친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국회 외교통일위더불어민주당 간사를 맡고 있는 이수혁 의원도 3일 민주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지난달 21일 (방한한) 비건 특별대표와 면담을 통해 미국이 북한의 단계적인 비핵화 조치와 연동된 상응조치가 담긴 협상 로드맵을 완성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북한이미측 로드맵을 세부적으로 전달 받고 공감을 표시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 의원도 “비건 대표가 (새 로드맵을) 북한에 설명할 기회를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2차 정상회담 자신감이 아직은 앞서 나간 레토릭에 불과하다는 회의론도 여전하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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