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ㆍ운동권 양당이 민의 왜곡
국회의원 늘려야 다양성 확보 가능
폐쇄적 엘리트 충원 방식 개혁해야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민주주의 정당이라면 국민 다수의 공적 이익을 위해 법안과 정책을 만드는 게 원칙이다. 우리 정당은 선거 때만 종복이다. 국회에 들어가면 국민 의사를 철저히 무시한다. 특히 권위주의 체제 유산을 이어받은 거대 양당은 정쟁 매달리기가 주업이다. 국회가 최근 신뢰도 여론조사에서 1.8%로 꼴찌(대통령 21.3%, 시민단체 10.9%)를 기록한 이유일 게다.
‘민주화의 아버지는 전두환’이라는 이순자씨 망언이 알려져 사회 각계의 비판이 쏟아졌지만 제1야당 자유한국당은 꿀 먹은 벙어리다. 그들의 뿌리가 박정희ㆍ전두환 군사정권인 탓이다. 한국당은 대기업 사학재벌 법조인 관료 등 한국 사회 기득권 집단을 대변해 온 부자 정당이다. 사학의 이익을 지키려 국민 87%가 지지하는 유치원 3법에 반대하고 검찰 등 법조계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개혁법안에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재벌 이익만 대변하니 대기업 중심 성장과 노동 배제 정책을 고집한다.
더불어민주당도 한국당 욕할 자격이 없다. 민주당의 주류는 DJ YS를 잇는 전통 야당과 민주화에 앞장섰던 운동권 세력이다. 수십 년간 교조적 구호를 외치며 투쟁만 해 온 이들이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인류 역사상 처음 맞닥뜨린 인구 감소와 고령화, 기술 혁신으로 빠르게 사라져 가는 일자리, 저성장에 따른 경제 위기와 첨예한 사회적 갈등. 우리 사회 현안이 과거와는 차원이 다르게 복잡다기해졌다. 4차 산업혁명의 흐름을 정확히 짚어 내는 전문가 집단이 나서도 구체적인 정책으로 연결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데 민주당은 여전히 변화에 둔감하고 무능한 직업 정치꾼과 운동권 명망가 일색이다.
국회가 선거제도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민의(民意)를 반영한 의석’이라는 대원칙 아래 국회의원 특권을 줄이되 의원 정수를 10%(30석) 늘리는 방안을 논의하는 모양이다. 연초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 10명 중 7명이 득표율에 비례한 ‘민심 그대로 선거제’에 찬성했다. 하지만 의원 수 늘리기에 대해선 80%가 거부감을 보였다. 국회 예산을 지금보다 줄이거나 유지하는 조건의 증원에도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10명 중 8명이 반대했다.
국민 뜻은 분명하다. 의원 수를 대폭 줄이고 200가지 넘는 특권과 특혜도 없애라는 것이다. 양심적인 무보수 의원 100명만 둬도 지금보다 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하지만 ‘지역구=기득권’인 상황에서 의원 정수를 줄이면서 비례대표를 늘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과거 지역구 두세 석 줄이는 방안도 합의가 안 돼 극렬한 충돌만 빚었던 게 현실이다. 전체 인구에 비해 국회의원 수가 많은 것도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의원 1인당 인구 수가 우리보다 많은 곳은 미국 일본 멕시코뿐이다.
거대 양당의 극한 대립을 막고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려면 비례대표를 늘리는 게 옳다. 지역구를 줄이면서 국민 대표성을 높이는 게 불가능하다면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 공천 투명성 확보를 전제로 의원 증원을 허용하자. 당 대표 구미에 맞는 운동권 명망가나 기득권 엘리트로 충원하는 폐쇄적 공천 방식은 곤란하다. 사회 각 분야에서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유능한 정치 신인들을 영입해야 한다. 청년, 장애인, 비정규직 등의 대표성도 높여야 한다. 그래야 공익 관점에서 정책 비전으로 경쟁하는 선진정치가 가능하다.
지금 국회는 기득권ㆍ운동권 거대 양당의 싸움터다. 생산적인 정책 논의는 실종된 지 오래다. 툭하면 단식하고 농성하고 투쟁한다. 이런 꼴사나운 행태를 언제까지 봐야 하나. 민심을 따르는 선거제도는 촛불의 명령이다. 선거 없는 올해야말로 선거제 개혁의 적기다. 정치가 미덥지 않다고 국회 무용론을 주장하면 민주주의는 영원히 실현되기 어렵다.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는 정치구도를 만들어야 사회적 갈등이 줄어들고 국민 삶이 바뀔 수 있다.
고재학 논설위원 겸 지방자치연구소장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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