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편사회’ 전문가 릴레이 인터뷰] <4>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편견, 혐오, 혐오표현, 증오범죄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 있습니다. 혐오표현을 하는 사람이 증오범죄도 저지릅니다.”
최근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 연구실에서 만난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혐오표현 문제에 가장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는 학자다. 그는 지난해 펴낸 자신의 저서 제목처럼 ‘말이 칼이 될 때’에 주목한다. “편견이 혐오로, 혐오가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다양한 수위의 차별, 적대, 배제, 폭력의 말들을 혐오표현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내 이 문제들이 하나로 연결돼 있음을 드러내야 합니다.”
최근 넘쳐나는 혐오표현은 우리 사회의 갈등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말들이 ‘표현’에 그치지 않고 칼이 되어 상처를 낸다. 공존을 꾀하기 위해서라도 혐오표현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혐오의 말이 차별의 현실과 만날 때 어떤 파괴력을 가질까.
“혐오의 칼끝은 소수자 집단을 향합니다. 대개 여성, 성 소수자, 이주민, 장애인들이죠. 혐오표현은 그러잖아도 취약한 기반 위에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소수자들의 처지를 더욱 악화시키고 정신적 고통마저 줍니다.” 홍 교수는 “학교에서 동성애자를 모욕하는 농담이 아무렇지 않게 난무하고 친구들이 낄낄거리며 웃는 상황에서 동성애자들은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드러날까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라며 “놀림과 따돌림의 대상이 되고 극단적으로 자살에 이르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혐오표현은 으레 ‘영혼의 살인’이라고 불린다. 그는 이어 “이들이 비동성애자와 평등하게 학교에 다닌다고 보기 힘들다”라며 “결국 배제되고, 누구나 평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공존의 조건’이 파괴된다는 점에서 혐오표현의 해악이 크다”고 지적했다.
혐오표현은 그 자체로 차별이다. 홍 교수는 “소수자 차별의 맥락이 있는 한, 표현의 수위와 상관없이 혐오표현은 차별을 재생산하고 공고하게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테면 “여대생들은 매일 스마트폰으로 예쁜 옷이나 구경한다. 그래서 불행한 거다”라는 발언. 실제 서울의 한 대학교수가 수업 중 한 말이다. 홍 교수는 “의도와 무관하게 여대생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고착화할 수 있다”라며 “이런 말들이 자꾸 발화될수록 그런 이미지는 더 강화되고 어느새 사실로 둔갑하고 이것이 다시 차별을 낳게 된다”고 했다. 다소 낮은 수위라 여겨지는 발언도 ‘죽여라’, ‘몰아내자’ 같은 극단적인 말 못지않게 해로운 이유다.
나아가 혐오표현은 차별과 폭력(증오범죄)으로 이어진다. 혐오표현에 있어서만큼은 표현과 행위가 분리될 수 없다. 홍 교수에 따르면, 혐오표현은 편견을 말로 드러내고, 증오범죄는 물리적인 폭력으로 행사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원인과 배경은 똑같다.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본다면 여성이 평등한 대우를 받는 게 부당해 보일 겁니다. 부당하다 생각되면 화가 나기도 하고, 어떤 계기로 화가 폭력을 부를 수 있죠. 열등한 존재의 의사를 존중할 리 없으니,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보거나 남성의 결정을 따라야 하는 종속된 존재로 보게 됩니다. 결별을 선언한 애인을 쫓아가 협박하거나 거부 의사를 무시하고 성폭행으로 이어지기도 하죠.” 홍 교수는 ‘된장녀’, ‘김치녀’ 등 혐오표현이 여성차별이나 폭력으로도 연결될 수 있는 과정을 이같이 설명한다. “증오범죄는 진공상태에서 발생하는 게 아닙니다. 그 대상 집단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의 역사, 그리고 그들을 차별하고 적대시하는 환경 속에서 발발합니다.”
우리 사회는 혐오를 배양하는 데 최적화된 환경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자정기능을 갖추기도 전에 혐오표현에 빠르게 잠식됐다. 인위적인 개입이 불가피하다. 홍 교수는 “최소한 회사나 교육기관 그리고 방송 같은 공공재에서 발화되거나 공무원에 의한 혐오표현은 당장 규제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10년 넘게 표류하고 있는 차별금지법 제정도 시급하다고 꼽았다.
동시에 혐오표현이 발붙일 수 없는 사회 여건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그는 ▲범국가적 차원에서 반차별 정책을 시행하고 ▲교육과 홍보를 통해 인식을 높이고 ▲소수자 집단에 대한 각종 지원 대책을 마련해 시민사회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효과가 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가용한 모든 자원을 투입해 유치원부터 초ㆍ중ㆍ고, 대학, 생애주기별로, 각 영역이나 조직별로 편견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는 최근 들어 혐오를 말할 때면 빠뜨릴 수 없는 ‘혐오에 맞서는 혐오’에 대한 견해도 밝혔다. ‘미러링’으로 시작해 번진 이른바 남성혐오에 대해서다. “이미 차별받고 있는 소수자(여성) 입장에서는 비하나 편견 가득한 말이 실제 차별로 이어지거나 폭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반면 다수자(남성)에게 향했을 때는 기분이 나쁠 수는 있지만 실제로 차별을 낳거나 폭력을 조장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여성혐오와 남성혐오를 같게 보면서 혐오는 다 나쁘다고 얘기하는 건 적절하지 않죠.” 여성들에게 ‘삼일한(북어와 여자는 삼 일에 한 번씩 맞아야 한다)’은 현실화될 수 있는 위협인 반면 삼일한을 미러링한 ‘숨쉴한(남성은 숨 쉴 때마다 한 번씩 맞아야 한다)’은 현실화될 수 없는 농담일 뿐이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집단으로서의 남성’을 겨냥하지 않고 성 소수자인 남성, 비정규직인 남성 등 소수성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갈등을 봉합해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혐오 조장에 나서는 세태에 대한 근심도 보탰다. “2017년 대선 TV토론회에서 당시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가 ‘동성애에 반대합니까?’라고 질문을 던진 장면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우리 사회에도 이제는 그렇게 물을 수 있는 정치인이 등장했다는 거니까요.” 그는 이어 “한 나라의 제1야당 대통령 후보가 외국의 극우정당이 할 법한 발언을 했다는 자체를 심각하게 봐야 한다”라며 “혐오문제를 자꾸 이슈화하고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활용하려는 정치적 선동이 앞으로 계속 등장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여러 사회적 갈등의 원인을 희생양인 소수자들에게서 찾는 데서부터 혐오의 문제는 출발합니다. 혐오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오히려 문제의 방향을 엉뚱하게 틀어 회피하게 만드는 것이죠.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혐오하지 않는 것, 혐오에 맞서 싸우는 것은 중요한 과제입니다.”
권영은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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